[비즈 칼럼] 화재 예방과 보상, 경제 원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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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며칠 전 부산 해운대의 대형 주상복합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 는 영화에서나 봤음 직한 현대식 고층 건물의 대형 화재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했다. 공교롭게도 부산은 지난해 11월 일본인 관광객 11명을 비롯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격장 화재가 발생했던 곳이라 더욱 안타깝다.

일반적으로 화재가 날 경우 사고 책임자는 화재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은 말할 것도 없고 법적으로 피해자에 대해 형사상의 책임과 민사상의 책임을 동시에 지게 된다. 특히 사고 책임자는 화재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이 과정에서 재기 불능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부산 사격장 화재의 경우에서도 최근 부산지법 형사합의부가 영업주와 관리인에게 화재 예방 및 소방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3년의 금고형을 선고했다. 아울러 사격장의 영업주는 16명의 화재 피해자 유가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부산시에서 영업주의 변제 능력이 부족하자 영업주의 전체 손해배상 책임액 가운데 절반 이상을 시와 정부 예산으로 보충해 주는 방식으로 피해자 보상을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보상 방식은 특히 가해자의 변제능력이 부족한 경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피해자나 그 유가족에게 경제적 보상을 해줄 수 있다는 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사적인 보상 분쟁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구성원의 합의나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개입하는 게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일까. 국민의 세금으로 민사배상을 해주는 것은 법리적으로 사적 자치 또는 자기 책임의 원칙과 충돌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해서인지 연초 소방방재청은 다수 국민이 출입하는 다중이용업소의 영업주 스스로가 화재에 대비해 피해자에 대한 배상능력을 사전에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소방방재청은 배상책임보험의 가입을 의무화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법령의 개정 일정이나 내용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건 없다. 따라서 앞으로 대형 화재에서 피해자의 보상 문제는 사격장 화재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나 지자체가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이번 고층 건물 화재사고에서 큰 인명피해는 없었고 해당 건물이 화재 및 배상책임보험에도 가입돼 있어서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손해배상을 대신해 주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건축물의 고층화 추세를 감안하면 이번 같은 화재의 위험은 늘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주나 영업주의 화재사고에 대비한 배상능력 확보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선 다중이용업소와 시설 등에 대한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가 조속히 구체화돼야 한다.

다행히도 국회에선 지난 8월 말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화재배상책임의 의무화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보험에 가입하면 위험관리 기능의 상당 부분을 보험사가 맡게 된다. 건물주는 화재 예방 대책이나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보험료가 비싸지므로 사고 예방에 신경을 더 쓰게 되는 유인이 작용한다. 사고 예방과 피해 보상이 이 같은 경제원리를 통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박세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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