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합니다] '골라골라' 발성법과 단속반 피하는 요령까지! 노점학원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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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 골라!" "싸요 싸!" 우스꽝스런 옷차림에 특이한 소품까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 상인들의 호객행위는 언제나 눈을 즐겁게 한다. 이들의 몸짓에 걸음을 멈추고 쌓아놓은 옷가지를 하나 둘 들쳐보기 시작하면 상인은 신바람에 노래까지 부르며 흥정을 시작한다. 얼핏보면 쉬워보이는 호객 행위. 그러나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그저 목소리만 크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요즘은 바야흐로 호객행위도 배워야 하는 시대이다.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한 건물. "배에 힘! 복식호흡하세요!" "허이 허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노점과 깔세'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 곳은 호객행위를 가르쳐주는 '학원'이다. 강의실에는 대여섯명의 30-40대 남녀가 강사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강사는 박수치는 법부터 목소리 톤 하나까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이때, 칠판에 적힌 강의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가짐 바로잡기', '멘트작성법', '발성법', '동작법'. 단순할 것이라고 생각한 강의는 꽤 세분화되어 있었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진 '호객행위' 강의는 총 두 달 코스로 이뤄진다. 게다가 이론 수업이 끝나면 현장으로 나가 실전 수업까지 진행된다. 노점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학원'은 없는 것이다.

평범한 회사원이였던 정순옥(40)씨는 회사를 관두고 노점 창업을 위해 이 곳을 찾았다. 그녀는 "소심한 성격탓에 호객행위하는 것에 두려움이 많았는데 이 곳에서 강의를 듣고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앞으로 규모는 작더라도 나만의 '가게'를 가지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강의를 주최한 '노점과 깔세'는 2001년에 개설된 인터넷 소자본 창업 동호회다. 1만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동호회가 어느새 5만명에 육박하는 회원수를 가진 정식사이트로 재탄생하며 그 규모는 더욱 커졌다. 현재 12기까지 배출한 이 강좌는 약 100명이 거쳤으며 다수의 수강생이 실제로 노점 창업의 꿈을 이뤘다.

그런가 하면 강사 김현빈(31)씨는 수강생 사이에선 '신'으로 불리는 사나이다. '호객행위에도 철학이 있다'는 노점 경력 10년의 그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수강생들에게 쏟아붓는다. 김씨는 단순한 호객행위 뿐만 아니라 노점 창업을 하는데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전수한다.

김씨가 말하는 '호객행위'의 필수조건에는 세가지가 있다. 먼저 첫번째,'팔은 45도, 다리는 25도'이다. 가끔 의욕에 앞서 몸을 사리지 않고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팔은 45도, 다리는 25도'로 벌린 채 호객하는게 가장 좋다는 것이 10년 경력의 베테랑 김씨가 내린 결론이다.

두번째, '주변인물을 동원하라'. 가족, 친구 등 자신의 지인들을 마치 '손님'인 양, '바람잡이'로 활용하는 것이다. 노점 앞에 한명이라도 더 있어야 손님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세번째, '스피드가 생명'이다. 정식 매장이 아닌 길에서 노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다. 단속반이 떴을 때 재빨리 상황을 정리해야 하기때문이다. 1분 안에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정리가 쉬운 접이식 가판대, 돗자리, 박스 등을 활용하는게 좋다는 것이 그의 귀띔이다.

'노점과 깔세' 김성현(38)사장은 "소자본으로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는 노점창업을 돕기 위해 강좌를 신설했다."며 "힘든 사회이지만 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영상=김정록·글=유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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