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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파트로는 최고층 화재 … ‘한국판 타워링’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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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건축법에 따르면 50층 이상이거나 높이 200m 이상인 건축물이 초고층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9월 신설된 것으로, 이전까지는 30층 이상이면 초고층으로 분류했다. 주택업계는 아직도 아파트 같은 주거시설의 경우 30층 이상을 초고층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급증하는 고층 아파트=2005년 6만여 가구였던 30층 이상 아파트는 2007년 12만여 가구였으나 올해는 26만 가구로 크게 늘었다. 전체 아파트의 3.6% 정도다.

국내에 초고층 아파트 열풍을 일으킨 건 1999년부터 분양된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1, 2, 3차(54~69층) 주상복합아파트다. 타워팰리스가 입주 이후 국내 최고 인기 단지로 떠오르면서 고층 아파트가 줄을 이었다. 국내에서 공시가격이 가장 비싼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도 46층이다. 한양대 건축학부 신성우 교수는 “좁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면 초고층을 많이 지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망권과 일조권도 초고층 아파트가 늘어나는 이유다.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이 함께 들어간 건물을 지음으로써 도심 공동화를 막는다는 것도 초고층의 순기능이다. 실제 서울 중구 등 도심에는 2007년 이후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이 잇따르고 있다. 앞으로 초고층 건축물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는 압구정지구 등 한강변 5곳의 재건축 사업지를 50층 이상의 초고층으로 조성할 계획이고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립 계획도 전국적으로 10개에 이른다. 이번에 불이 난 부산 해운대에서도 최고 80층 높이의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화재 방비 소홀=초고층 건축물이 늘고 있지만 화재 안전 대책은 소홀하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소방법과 건축법을 고쳐 초고층 건물은 ‘성능 위주의 소방설계’를 하도록 했지만 유명무실하다. 소방설계는 화재 등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고 이에 맞춰 안전 설비를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이미 까다로운 소방설계로 화재 등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세부 규정을 마련하지 못하고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방업계 관계자는 “소방설계를 하면 공사비가 크게 늘어난다는 이유로 건축주나 건설사의 반대가 심하다”며 “이 때문에 정부도 세부 규정에 대한 연구를 끝내고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11층 이상 고층 건물에는 지하층을 포함한 전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소화기·소화전 같은 구조용품을 구비해놓는 것도 의무사항이다. 소화기는 층마다 놓고, 복도가 있을 경우 20m 간격으로 1대씩 놓도록 하고 있다. 옥내 소화전도 층마다 설치해야 하며 복도에서는 25m 간격으로 1개 함을 구비해 놓아야 한다.

또 대피 중에 질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층마다 제연설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연기를 빼주고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는 시설로, 소방관들의 현장 활동을 돕는 역할도 한다.

건축법의 ‘건축물 내부 마감재료 기준’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경우 층수와는 관계없이 벽면을 불연재료, 준불연재료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건물도 공동주택에 해당하므로 계단 등의 벽면을 불연재료로 써야 했다. 그러나 고층 빌딩 건축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알려진 대피층에 대한 규정은 아직 없다. 소방방재청 소방제도과 정재환 담당은 “50층 이상, 높이 200m 이상인 초고층 건물의 경우 30층마다 대피층을 만든다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설명했다.

초고층 주거시설에 대한 화재 안전 대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5년 허용한 아파트 발코니 확장이 대표적이다. 경민대 소방행정과 이용재 교수는 “발코니는 화재 때 불길 차단막 역할을 하고 거주자에게 대피공간을 제공한다”며 “이 때문에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발코니 확장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초고층 주거시설은 특히 발코니가 없는 데다 외관 디자인을 위해 커튼월(Curtain wall:건물 외벽을 유리로 마감하는 것) 방식으로 지어 화재에 더욱 취약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권영덕 선임연구위원은 “커튼월이 불길을 위층으로 밀어 올리는 기능을 하는 데다 밀폐구조여서 주민이 질식할 수도 있다”며 “커튼월로 마감할 경우 일반 건축물보다 더 까다로운 방재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특수방화관리자를 두거나 건물 규모에 비례한 자체 소방조직을 두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함종선·황정일·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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