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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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련에게는 태연하게 이제 막 지방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겨 앉은 중진 연출가 행세를 했지만, 그 무렵 내 처지는 막막하고도 고단하였다. 88올림픽 이후 한동안 흥청거렸던 문예부흥적인 분위기와 특히 대학로를 중심으로 번져가던 폭발적인 소극단 운동에 자극받아 무턱대고 부산을 떠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서울은 만만치 않았다. 그것도 막차를 탄 셈인지, 대학로는 그사이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의 질서로 짜여 가고 있어, 나처럼 여러 해 지방에서 빈둥거리던 아마추어 연출에겐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다. 대학 선후배를 연줄로 여기저기 줄을 서 보았으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은 내 몫으로 지워진 광복동 변두리의 작은 건물이 든든한 재정적 후원자가 되어준 일이었다. 건물의 절반은 무거운 전세금에 묶여 있었지만, 작은 보증금에 월세로 되어 있는 부분에서 송금되는 것만으로도 나이 든 독신자의 생계는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최소한의 궁상은 면했지만 자리 잡지 못하고 떠도는 삶의 비참은 여느 실업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구걸하다시피 얻어낸 자리가 대학 시절에 함께 연극을 한 적이 있는 선배가 새로 꾸민 작은 극단의 무보수에 가까운 객원 연출 자리였다. 하지만 말이 연출이지 실제로는 기획, 홍보에서 소품에 이르기까지 극단이 필요로 하는 곳이면 전천후로 뛰는 보조 잡무수(雜務手)에 가까웠다.

그 한 해 나는 애써 서른다섯의 나이를 잊고 - 그때만 해도 어느 분야든 서른다섯의 나이는 만만찮은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 새로 끼어들게 된 연극 환경에 나를 맞춰나갔다. 나름의 연출 수업 이외의 잡무들은 때로 성가시고 짜증나는 것이었으나, 돌이켜보면 내 연출 이력에 매우 유익한 배경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 일 년 남짓 동안에 내 아마추어적인 연출 경력을 프로의 감각으로 재편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80년대가 닫히는 그해에 나는 비로소 아서 밀러의 <크루서블>로 중앙무대에서 첫 연출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에 부산에서 체호프의 <갈매기>와 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를 연출해본 적이 있지만, 서울하고도 대학로 무대에서의 연출은 어지간한 늦깎이로서도 떨리는 데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연출의 구석구석이 못 미덥고 불안한 것이 되었다. 더구나 <크루서블>은 내가 연극을 시작하면서 꼭 한 번은 연출하고 싶던 몇 개의 연극 가운데 하나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부산에 있는 내 건물의 월세 한 층을 전세로 전환시켜 마련한 목돈을 밑천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배역과 기획까지 도맡았다. 거기서 다시 헤련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음악 연출을 맡았을 때 그녀가 보여준 특이한 음악 감각을 문득 떠올린 탓이었다. 그 연극의 클라이맥스에서 그녀가 삽입한 리투아니아 민속음악의 독특한 가락은 어쭙잖은 물욕으로 자식과 형제를 몰라보고 죽이게 된 사람들의 슬픔과 허탈을 극적으로 강화시켰다. 그녀라면 마녀 재판의 음습한 청교도적 열정에 빠진 세일럼 마을과 욕정에 미쳐 마녀가 된 에비게일, 그리고 신념을 위해 기꺼이 죽어가는 프록터를 위해서 알맞은 음악을 찾아줄 것 같았다.

나는 용케 찾아낸 혜련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보았다. 이미 이 년이 지난 것이라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하숙집 주인인 듯한 여자에게서 혜련이 옮겨간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요즘 뭐하냐? 그새 무대음악 공부는 좀 했고?”

혜련과 연결이 되자마자 나는 불쑥 그렇게 물었다. 그래 놓고 나니 어제그제 헤어진 여동생에게처럼 스스럼없는 내 말투가 스스로도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는 혜련도 마찬가지였다. 헤어지고 이 년 만에 받는 전화 같지 않게 내 말을 받았다.

“이제 겨우 학기만 다 끝냈어요. 무대음악 공부는, 글쎄요…. 대학에는 따로 그런 전공이 없어 혼자 한다고는 해봤는데 아직….”

“그럼 실전 경험 한번 해 볼 테냐?”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리투아니아 사람들>, 여기서 리바이벌이라도 해요?”

“아니ㅡ 그건 아니고, 어쨌든 한번 만나자. 바로 나올 수 있지?”

그렇게 해서 다시 혜련을 만난 나는 그 무렵 들어 <세일럼의 마녀들>이란 제목으로 새로 나온 <크루서블> 번역판을 내놓으며 물었다.

“너 이 작품 봤어? 희곡으로라도 읽어본 적 있느냐고?”

그러자 책을 집어 들고 제목을 읽어본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서 밀러나 세일럼, 마녀 모두 귀에 익은 말인데 그러나 이 제목으로는 연극도 희곡도 본 것 같지가 않네요….”

그러다가 갑자기 무엇을 떠올린 듯 재빨리 말투를 바꾸었다.

“아, 알겠어요. 이거. 원작 제목은 <크루서블>일 거예요. 도가니, 시련, 뭐 이런 뜻의…. 영화로 본 적 있어요. 그런데 이걸 왜요?”

“이번에 우리 극단에서 내가 연출하기로 돼서 그래. 이거 음악 한번 맡아보지 않을래?”

“그러고 보니 그동안 피차 너무 소원하게 지냈네요. 난데없이 우리 극단이라니, 그게 어느 극단이에요?”

그 말에 내가 새로 찍은 명함을 꺼내 주며 말했다.

“여기야. 앞으로 자주 연락해야 할지 모르니, 이거 잘 챙겨둬.”

“아, 여기요? 이 극단이라면 좀 알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언제부터 여기서 연출을 맡게 되었죠? 여기 요즘 꽤 날리던데.”

가만히 명함을 들여다보던 혜련이 갑자기 진지해진 얼굴로 받았다. 그 극단에서 그해 올린 연극 세 편 중에 두 편이나 크게 흥행에 성공한 것이 지명도를 높여준 때문인 듯했다.

“작년 초부터. 하지만 놀랄 건 없어. 기껏 무보수 객원 연출자야. 이건 서울에서의 내 첫 번째 연출이고….”

“그래도 반(半)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지방극단과는 영판 다르죠. 이 정도의 극단에서 저 같은 풋내기의 경력을 믿어줄까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이번 기획은 내 책임 하의 독립채산이야. 망해도 내가 망하는 것이니까, 내게 그만한 재량은 있어. 어때 해볼 거야?”

그러자 혜련은 제법 한국식의 겸양까지 떨어 보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무얼 믿고 제게 음악을 맡기려고 하세요? 이건 <리투아니아 사람들> 때같이 특별한 뿌리의 체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니야. 이번에도 무언가 네 독특한 감각이 도움이 될 것 같아. 19세기 초 미국 동부 청교도 지역의 음습한 정서, 특히 마녀 재판을 둘러싼 집단광기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죽음 같은 것에 대한 이해…. 어때? 그때처럼 한번 해보지 않을래?”

그 말에 혜련의 표정이 실무적인 것으로 돌아갔다. 짧게 생각에 잠기는 눈치더니 조심스레 대답했다.

“선생님 연출이라면 함께하고 싶어요. 그러나 실제로 잘할 수 있을지는 영 모르겠네요. 한번 차분하게 생각해보고 내일까지는 전화드릴게요.”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내일까지 생각해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바로 마음 정하라고.”

공연히 다급해진 내가 그렇게 결정을 재촉해 보았지만 그녀는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선생님이 절 믿어주시니까 더 겁이 나네요. 하루만 주세요. 이것저것 조금만 더 살펴보고 말씀 드릴게요.”

말은 그래도 헤련의 얼굴빛에는 어딘가 낙관적인 기대를 품게 하는 데가 있었다.

혜련의 전화는 다음 날 생각보다 일찍 왔다. 막 극단으로 출근해 배우들과 대본 점검을 하고 있는데, 창구 담당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전갈이 왔다. 받아보니 혜련이었다.

“좋아요. 선생님, 한번 해볼게요. 다행히도 집에 가서 찾아보니 참고할 만한 자료도 몇 있네요. 또 저에게도 정식 무대에서 음악감독으로는 첫 데뷔라 최선을 다할 각오도 돼 있구요. 하지만 결과가 신통찮더라도 너무 원망하지는 마세요. 이 일로 선생님하고 삐끗하게 되는 것 지금은 그게 제일 겁나요.”

나는 그녀가 승낙해준 게 반갑고 고마워 그 밖의 다른 소리는 모두 지내 들렸다. 그때가 아직 아침나절이라는 것도 잊고 대뜸 소리쳤다.

“야, 고맙다. 이따가 우리 만나 대포 한잔하자. 작품 얘기도 하고.”

그래 놓고 다시 까닭 모르게 다급해져 만날 시간을 재촉한 끝에 그날 다섯 시로 약속을 잡았다.

그날 혜련과 만나기로 한 곳은 대학로에서 멀지 않은 카페테리아였다. 그러나 이름이 그럴듯해서 카페테리아이지, 저녁 때 몇 개의 경양식 메뉴가 나오고는 곧 호프집으로 변하는 규모 큰 술집이라는 편이 옳았다. 주로 연극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그곳에서의 초가을 오후 다섯 시는 아직 커피와 경양식이 주된 메뉴가 되는 시각이었다.

내가 도착하니 혜련은 거기서 만난 다른 사람과 막 작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상대가 젊은 남자여서인지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또래에서는 큰 키인 나보다도 반 뼘은 커 보이는 남자였는데, 그러면서도 몽골리안을 강조하는 듯한 윤곽의 얼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혜련에게서 들어 나를 알고 있는지 내 곁을 지나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왠지 몹시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어 나도 황급히 머리까지 수그리며 그에게 답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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