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는 여성 대장, 장성택은 국방위 2인자 … 김정은 승계까진 고모·고모부 섭정체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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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모 김경희는

김정일 각별한 사랑 받아
심장 좋지 않다는 소문 있지만
작년 6월부터 공개활동 왕성
올해 가장 많이 현지지도 수행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김정은 후계체제의 후견인으로 핏줄을 선택했다.

27일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셋째 아들 김정은 등 외에도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부장에게 대장의 군사 칭호를 부여했다. 북한 역사에서 여성의 대장 임명은 처음이다. 이는 지난 6월 김경희 남편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위원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승진시킨 것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당·군의 핵심 포스트를 맡은 장성택과 김경희가 김정은 후계체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게 하는 포석이다. 건강 악화로 후계체제를 서둘러야 하는 김정일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가족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일에게 김경희는 각별한 존재다. 7살 때 어머니 김정숙이 사망한 이래 유독 김경희를 챙겼고, 김경희도 김정일만 따라다녔다고 한다. 김일성이 김경희와 장성택의 결혼에 반대해 어려움을 겪을 때도 김정일이 직접 나서 결혼을 성사시켰다는 얘기들이다. 김경희는 2006년 프랑스에서 자살한 것으로 확인된 딸 금송 외에 더 이상 자식을 낳지 못할 만큼 심장이 좋지 않다고 한다. 김경희는 줄곧 당 부장 직책을 갖고 있지만 활동은 거의 없었다.

94년 김일성 장례식장에서 김정일과 함께 사진을 촬영한 이후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 지난해 6월 15년 만에 김정일과 더불어 공개활동에 나섰다.

이후 김경희는 장성택과 더불어 김정일을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 김경희는 올해 72회, 장성택은 71회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따라다녀 김정일 수행 횟수 1, 2위를 기록했다.



고모부 장성택은

1972년 결혼, 로열패밀리 입성
김정일 후계자 오를 때 1등공신
2004년 독직사건으로 좌천
김정일 뇌졸중 뒤 킹메이커로

장성택은 권력의 부침이 심했다.

1970~80년대 김정일이 후계의 길을 걸을 때 오른팔 역할을 하다가 2004년 좌천된 뒤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다. 46년 강원도 개천에서 태어난 장성택은 72년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로열패밀리에 입성했다. 69년 대학 졸업 후 3년간 모스크바에 유학하는 혜택도 봤다.

당 생활은 평양시 당위원회 지도원으로 시작해 당 조직지도부 외교부 담당, 당원등록과장을 지냈다. 이후 당 청소년사업부 부부장(82년)·부장(88년), 청년 및 3대혁명소조부장(89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95년)을 거쳤다. 북한에서 조직지도부는 ‘당속의 당’으로 불리는 막강한 조직이다.

2002년엔 남한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서울과 경주·제주 등 남한 곳곳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고위 간부들이 무더기로 연루된 독직 사건에 휘말리면서 조직지도부 제 1부부장에서 물러나 이른바 ‘혁명화’ 과정을 거쳤다. 그후 2006년 수도건설위원회 부장에 올라 재기했고 이후 노동당 행정부장을 맡으면서 권력의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당 행정부장은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부·사법기관을 관장하는 자리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당시의 업무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임하면서 실세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장성택은 2008년 김정일의 뇌졸중 이후 킹메이커로서 후계자 교육과 북한 내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과도기를 맞아 서방이 장성택의 동향을 주목하는 이유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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