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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계고에서 대학 문 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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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글= 최석호 기자, 사진= 최명헌 기자

조리자격증만 3개, 입학사정관 전형을 넘다

김동환씨

“요리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다른 모양과 맛을 낼 수 있는 ‘창작활동’입니다. 세계적인 조리전문학교를 설립하는 게 제 꿈이죠.”

지난해 네오르네상스 전형(영예형)으로 경희대 Hospitality학부에 합격한 김동환(19)씨가 부산조리고를 택한 건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어릴 때부터 돼지국밥집과 피자집을 운영한 부모님을 돕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나 식당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 김영수(49)씨가 극구 말렸다. “일반계고에 들어가 대학에 진학해 평범한 회사원이 되길 바라셨던 거죠.” 한 달 넘게 아버지를 설득하고, 진로가 바뀔 경우 부모로부터 어떤 경제적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뒤에야 조리고에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김씨는 바로 조리사 시험 준비를 했다.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 하루 4~5시간씩 독학하며 1개월 만에 조리사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그 해 11월에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고3이 돼서는 양식과 일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또 ‘훗날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3학년 때는 영어학원에 다니며 회화도 익혔다.

고2 말 전교 1등, 전교부회장 경력을 무기로 네오르네상스 전형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갔다. 3학년 여름방학 때 15박16일 일정으로 전국일주에 나서 지역의 유명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느낀 점을 적은 ‘요리노트’를 제작했고, ‘불고기 돈가스’와 ‘들고 먹는 메밀국수’ 등 자신만의 창작 레시피를 만들었다. 경희대 임진택 책임사정관은 “요리에 대한 열정과 ‘조리학교를 만들겠다’는 꿈이 확실해 좋은 평가를 내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교 시절 익힌 특정 분야 재능만 부각시킬 수 있다면 잠재력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과 후 특별수업으로 부족한 학업 보충

박현정씨

박현정(19·여·서울시립대 경제학부 1)씨는 중3이 되던 해 공사장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일거리가 없어지면서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 “한 학기에 50만원씩 하는 일반계고 수업료를 감당할 수 없었어요.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였거든요.” 서울 성서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상위 8% 내신성적의 우등생이었던 그는 “전액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경복비즈니스고로 눈을 돌렸다.

“처음 고교에 들어갔을 때 국어·영어·수학교과 수업시간이 일주일에 각각 두 시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일반고 학생들은 적어도 4~5시간씩 수업을 받는데, 너무 차이가 나더라고요.” 경제적 형편 때문에 학원도 다닐 수 없었던 박씨는 고민 끝에 ‘방과 후 특별수업’을 활용하기로 했다.

오후 5시 수업이 끝나면 국어·영어·수학·직업탐구 방과 후 수업을 들었다. 국어·영어·수학의 경우 일 주일에 세 시간씩 보충수업으로 부족한 학습을 보완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그는 “방학 때도 등교해 주 중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자율학습을 했다”며 “학기 중에는 오전 6시30분까지 등교해 영어듣기 문제를 풀고, 전날 공부한 중요 개념을 복습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등급대의 내신성적(국어·영어·수학·사회 1.93등급)을 유지했다.

고교 입학 당시 5등급이었던 언어·수리·외국어 모의고사 성적은 수능에서 각각 3, 3, 4등급으로 올랐다. 직업탐구 3과목은 1~2등급을 받아 서울시립대 전문계고 전형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췄다.

고교 때 정보처리과를 전공한 박씨의 꿈은 ‘세계 경제상황을 예측하는 프로그램 개발’이다. “일반계고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면서 꿈이 구체화됐어요. 전문계고 진학이 오히려 제게는 복이 돼 돌아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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