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밴드 형제의 대결 … 동생이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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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에드 밀리밴드, 데이비드 밀리밴드(왼쪽부터)

에드 밀리밴드(40) 신임 영국 노동당 당수. 그는 늘 형의 뒤를 따라다녔다. 대학까지 같은 학교를 나왔고, 형이 2001년에 국회의원이 되자 4년 뒤에 출마해 당선했다. 형의 장관 임명 2년 뒤 자신도 에너지 장관이 됐다. 학교와 정치권에서 형이 워낙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는 주로 ‘누구의 동생’으로 소개됐다. 형의 그림자 속에서 커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형제 간의 경쟁에서 형을 추월해버렸다.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그는 25일(현지시간)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형 데이비드(44) 전 외교부 장관을 가까스로 이겼다. 총 5명의 후보가 나선 선거에서 당초 형은 37.8% 득표로 1위를 차지했다. 동생은 34.3%로 2위였다. 그러나 과반 득표자가 없던 탓에 3, 4, 5위 후보가 얻은 표를 1, 2위 후보에 배분해주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 경선에서는 투표자들로 하여금 원하는 후보 2명을 선호도 순으로 표기토록 한 뒤 일단 1순위 기준으로 표를 계산한다. 이때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부진한 후보자들의 표를 2순위 기준으로 1, 2위 득표자에게 표를 나눠주도록 돼있다. 이런 규정 때문에 결국 개표 결과는 50.65% 대 49.35%. 동생의 막판 뒤집기였다.

승리의 요인은 노조의 지지였다. 데이비드는 일반 당원의 표를, 에드는 노조원의 표를 많이 얻었다. 노조는 동생이 형보다 노동자의 권익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 형제는 정치 토론이 일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벨기에 출생의 폴란드계 유대인인 부친은 1980년대 영국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인 랠프 밀리밴드(1924∼94), 어머니는 여성 좌파 운동가 마리온 코작(75)이다. 집에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정치가와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BBC 방송은 동생인 에드가 부모의 좌파적 시각을 더 많이 물려받았다고 전했다. 데이비드와 에드는 나란히 옥스퍼드대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했다. 학업 성적 면에서는 동생이 더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제는 선거 전에 “정치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며 우애를 과시했다. 하지만 촉망받던 형의 정치적 장래는 경선 패배로 난관에 봉착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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