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지 학생이 들고 담임교사에 검사 받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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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45.78%’. 올해 처음 실시된 교원능력개발평가(이하 교원평가)에 학부모들이 참여한 비율이다.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학부모들은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로 학생들의 신상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걱정과 지나치게 많은 평가항목, 실효성 없는 공개수업 등을 꼽았다.

특히 일부 지역의 저학년 학급에서는 평가한 용지를 들고 학생이 담임교사에게 검사를 받은 경우도 있는 등 교원평가에 익명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이 26일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학부모 교육정책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대부분 “익명성 보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 교육정책 모니터단이란 각종 교육정책에 대해 의견을 내는 자문단으로, 지난해부터 시·도교육청별로 위촉해 전국에서 모두 650명이 활동하고 있다. 교원평가에 대한 이번 모니터링은 ▶사전 홍보 ▶시행 계획 등의 공지 ▶평가문항 ▶정보 제공 ▶평가참여자 보호 ▶평가 효과 등 총 여섯 가지 항목에 대해 시·도별로 6~7월 두 달간 실시됐다.

모니터 요원들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교육청에는 회신봉투가 없어 평가 결과가 노출되기 쉬운 것은 물론 저학년 학급에서 담임교사가 평가용지를 직접 검사한 경우도 보고됐다. 학년·반·번호로 ‘로그인’을 해야 하는 인터넷 평가도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산 지역의 학부모 모니터 요원들은 “자녀에 대한 불이익을 우려해 엄격한 평가가 되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불안감 팽배’ ‘전혀 보호되지 않는 셈’ 같은 표현도 보고서 곳곳에서 등장했다.

지나치게 많고 까다로운 평가항목도 문제로 지적됐다. 제주교육청에는 “설문 문항 수가 너무 많다. 지루함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대구 지역에서는 보건교사·영양사 등 비교과 교사 평가와 관련해 “한 번도 보건실을 이용하지 않은 아이와 학부모가 보건교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했다. 인천교육청 모니터요원은 “설문 문항 중 ‘발문’(교사-학생 간 문답), ‘피드백’ 같은 용어가 포함돼 있어 일부 학부모로선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 평가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업 참관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충북 지역에서는 “맞벌이부부에게 연 4회 실시되는 수업공개에 참석하라는 것은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서울교육청 모니터단은 “내 자녀의 발표 모습에 집중하는 학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개수업이) 밀도 있는 수업보다 보여주기 식의 수업으로 흐르는 경향이 많다”는 의견을 냈다.

이 밖에 “어떤 학교는 홈페이지, 가정통신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까지 동원해 평가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데 반해 어떤 학교는 안내문 한 장을 보낸 게 전부였다”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물어봐 응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학생이 두 번 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권 의원은 “참여율이 절반을 밑도는 데는 제도가 미비한 탓이 크다”며 “일선 학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시·도교육청이 단일한 기준을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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