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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냐로 생산 줄면 가격 오를 듯 … 투기 세력 갑자기 빠지면 급락할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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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24면

올 추석 주부들 시름이 깊었겠다. 봄철 이상저온 현상과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낙과(落果)가 많아지고 채소 작황이 좋지 못해 차례상 비용이 훌쩍 올랐다. 한국물가협회가 14일 추산한 가구당 차례상 비용은 19만4540원이다. 불과 보름 전 조사(17만9220원)에 비해서도 8.5% 올랐다. 한 대형마트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보다는 17%나 올랐다고 한다.

치솟는 농산물값, 농산물 펀드가 뜬다는데

농산물 가격 급등은 국내 얘기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이다.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밀·옥수수·대두 등 곡물은 물론이고 커피·설탕 등 기호 식품의 가격도 크게 올랐다. 3개월 전에 비해 밀(소맥)과 옥수수는 50%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국제원유(WTI) 가격은 떨어졌고, 금도 3% 남짓 오르는 데 그쳤다. 전 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많이 올랐다는 필리핀 지수도 상승률이 20% 남짓이다.

가격이 급등하면 투자자들이 모여들게 돼 있다. 가격 변화에 가장 민감한 헤지펀드는 물론이고 밀·옥수수 등 선물 거래, 농산물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펀드(ETF), 농산물 펀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초저금리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헤지하려는 목적의 투자자들도 몰린다.

과연 농산물은 투자할 만한 대상인가. 답을 얻기 위해 농산물 가격을 밀어올리는 4대 요인을 짚어봤다. 장기적으로는 농산물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단기 투자하겠다면 시장 흐름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다.

1 이상 기후에 따른 수확 감소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농산물 수요는 꾸준하다. 인구가 늘고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쓰이면서 플러스 요인이 더 많다. 그러나 공급 측면에서는 아니다. 한 번의 홍수로 작물이 쓸려가고 가뭄으로 이삭이 말라 죽는다면 생산량이 평년의 절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

2008년이 그랬다. 기상 이변으로 농산물 수확량이 감소하며 가격이 급등했다. 그해 3월 밀(소맥)은 한때 부셸당 13달러를 넘어섰다. 옥수수는 2008년 6월, 부셸당 7.55달러까지 치솟았다. 올해도 비슷하다. 가뭄·폭염 등으로 전 세계가 이상 기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밀 수출의 14%를 담당하는 러시아에선 가뭄·폭염에 화재까지 겹쳤다. 자국 내 수요도 빠듯해지자 러시아 정부는 연말까지 ‘방곡령’(곡물 수출 중단 조치)을 내렸다. 내년까지 연장할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소맥 파종도 늦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겨울 밀 수확량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북반구 작황이 시원치 않으면 남반구라도 제 몫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좋지 않다. ‘라니냐’(적도 부근의 동부 태평양에서 해면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현상)가 문제다. 미 해양대기관리처(NOAA)는 라니냐 현상이 내년 초까지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니냐는 아르헨티나·브라질·호주 등 주요 곡창지대의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이곳의 소맥·옥수수·대두 등의 생산이 줄어들 수 있다.

라니냐는 커피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브라질은 최대 커피 산지다. 라니냐로 커피 공급 부족이 염려되면서 14일 미국 뉴욕 시장에서 12월물 아라비카 커피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1.95달러를 기록했다. 13년 만의 최고치로, 6월 이후 50% 가까이 급등했다. 날씨야 하늘에 달린 문제지만 당분간은 이상 기후로 인한 수확 감소, 이에 따른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 신흥국 성장에 따른 육류 소비 증가
고기는 비효율적인 식량 자원이다. 돼지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선 옥수수 7㎏이 필요하다. 쇠고기는 11㎏이 든다.

과거엔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 주로 고기를 먹었다. 소득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에선 육류보다는 쌀·밀 등 곡류를 주식으로 했다. 그러나 중국·인도·브라질 등의 산업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얘기가 좀 달라지고 있다. 중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올해 4000달러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소득이 늘면서 중국인들도 고기를 찾게 됐다. 중국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70년대 10㎏을 조금 웃돌던 것이 지난해 60㎏까지 늘어났다. 중국인 한 사람이 간접 소비한 옥수수량이 최소 420㎏을 웃돈다는 의미다. 아직 미국인의 육류 소비량(1인당 124㎏)에는 못 미치지만 인구를 감안하면 전 세계 소비량이 급증했다는 얘기다.

늘어난 육류 소비량을 맞추자면 숲을 개간하거나 기존에 주식 곡물을 재배하던 토지를 사료용 곡물 재배지로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밀을 심던 곳에 옥수수를 심어야 한다. 밀을 적게 심으니 수확량이 감소해 가격을 밀어올린다. 그렇다고 옥수수값이 하락하는 것도 아니다. 옥수수 생산량은 2007년 이후 급격히 늘었다. 그러나 소비량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억5000만t에 육박하던 옥수수 재고량이 내년에는 1000만t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재고량이 줄면 가격은 오른다.

상품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농산물 부족 사태가 온다”며 “농산물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격 흐름은 길게 봐야 한다. 단기 급등락을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밀의 경우 6월 초 부셸(약 27.2㎏)당 4.2달러 선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급등해 8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투기세력까지 붙어 부셸당 13달러를 웃돌았던 2008년 3월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3 옥수수·대두 등 바이오연료화
지난 6월 유엔 산하 세계식량기구(FA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0~2019년 세계 농업생산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 작성에 참가한 학자들은 세계 식량 생산과 곡물 가격에 영향을 미칠 최대 변수로 유가와 에탄올 등 바이오연료를 꼽았다.

2007~2008년의 곡물 가격이 급등한 가장 큰 요인은 국제유가 상승과 온실가스 감축 의무 등의 여파로 바이오연료용 곡물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바이오 에탄올용 옥수수 생산량은 90년 전체 옥수수 생산량의 6%에 그쳤으나 2007년에는 30%까지 늘었다.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도 2007년 ‘20 in 10’ 계획을 발표하며 곡물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이 계획은 바이오 에탄올 등 재생 가능 연료를 앞으로 10년 안에 꾸준히 늘려 자동차용 가솔린 소비량을 20%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중국도 2000년대 들어서면서 남아도는 곡물을 처리할 목적으로 바이오연료 생산을 늘렸다. 유럽연합(EU)이나 브라질 등 남미의 곡물 수출국도 가세했다. 그 결과 곡물 공급이 넘치던 세상에 변화가 일어났다. 2004년까지 15억 부셸에도 못 미치던 에탄올용 옥수수 수요는 최근 45억 부셸을 넘어섰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제 유가가 계속 배럴당 70달러 이상으로 유지되면 바이오연료 생산에 쓰이는 옥수수와 대두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본다. 미국과 브라질 등에서는 옥수수를 바이오 에탄올 생산에, 유럽에서는 대두를 바이오 디젤 생산에 주로 사용한다. 연구소에 따르면 2009년에서 2018년까지 10년간 바이오 에탄올 생산은 연평균 7.1%, 바이오 디젤은 9.6% 증가할 전망이다. 앞으로 옥수수와 대두의 소비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다만 이 역시 신흥국의 육류 소비 증가와 마찬가지로 구조적 변화다. 단기적으로 값을 올리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4 농산물 선물 투기 세력
19세기 중반, 세계 최대의 곡물 거래소인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가 만들어진 건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농산물 거래에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자들이 가세하면서 선물 거래 자체가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

올 들어 영국 런던 선물시장에서만 10억 달러를 투자해 24만1000t의 코코아 원두를 사들인 아마자로펀드가 대표적이다. 아마자로는 국제 상품 시장에서 대표적인 헤지펀드로 꼽힌다. 이 펀드는 연간 전 세계 코코아 원두 생산량의 7%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지펀드의 사재기와 세계 최대 생산지인 코트디부아르의 폭우와 맞물리면서 코코아 가격은 4월 말 미 뉴욕상업거래소에서 t당 3239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코트디부아르의 수출량이 늘어나고 7월 아마자로펀드가 코코아를 사재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후엔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코코아 원두는 t당 270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특히 투기적 거래의 증가와 감소는 단기 농산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올 상반기까지 농산물 시장에 투기 세력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름 기상 이변에 따라 농산물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가 늘면서 농산물에 대한 투기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말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옥수수 선물에 대한 투기 순매수 포지션은 38만2000계약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두 선물의 순매수 포지션도 13만2000계약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투기 세력의 가세로 17일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부셸당 옥수수값은 5.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부셸당 옥수수값이 5달러를 넘기기는 지난해 9월 말 이후 처음이다. 24일 대두는 11.26달러를 기록하며 3개월 전보다 20% 가까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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