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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보유 공식선언] 왜 북한 핵선언에 관대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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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左)이 10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워싱턴 AP=연합]

미국은 대량살상무기(WMD)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아직 WMD를 찾지 못했고, 이란에는 핵무기 개발 야망이 있다는 이유로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불행한 일'이라며 이 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심지어 애덤 애럴리 국무부 부대변인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북한과 이란에 대한 미국의 대응방식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라크와 이란.북한 등 미국이 비난해온 소위 '악의 축' 3개국 가운데 북한에만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핵이 있다고 해도 북한이 그걸로 어쩌겠다는 거냐"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부시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플루토늄을 먹고는 못 산다"고 강조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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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는 행정부 고위 인사의 "차라리 잘됐다"는 발언을 인용했다. 그동안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우려해도 한국과 중국 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불만을 반영한 발언이다. 이쯤 왔으니 한.중 양국 정부도 가만히 있진 못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의 힘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크게 분산돼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미셸 플로니는"북한은 우리가 취할 어떤 종류의 군사행동에도 반격할 능력이 있다"며 "남한에 대한 대포와 미사일 공격은 수백만명의 사상자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잠재적 위협일 뿐만 아니라 이란과 달리 당장에 실제 위협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선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 크게 부각될 경우 부시 행정부의 외교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에 가급적 의미를 축소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여러 차례 '내가 지켜보는 한(on my watch)'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전 세계의 경찰 역할을 강조해 왔다. 북한의 핵 선언은 부시 행정부로선 망신이다.

한편 잭 프리처드 전 북핵 특사는 "현재 이란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과 추가로 대립할 만한 여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내에 대북 강경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부의 전망이다.

부시 행정부의 성격상 북한에 질질 끌려다니는 식의 외교는 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을 배경에 깔고 있다. 그 경우 한.미 관계는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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