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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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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야크 신화쓰는 강태선동진레저 회장,...능선 타면 돌아가서라도 지속적으로 등반 #지난해 매출 50% 키운 데 이어 올해 약 30%성장 예상..중국3위 아웃도어로 부상


이코노미스트 1993년 강태선 동진레저 및 블랙야크 회장은 히말라야로 향했다. 엄홍길 대장과 함께다. 당시 등산용품 시장은 고사 직전이었다. 1992년 정부가 산에서의 취사와 야영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등산용품 업체 열 곳 중 일곱 곳이 문을 닫았다. 강 회장도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급한 불을 끄고 사업 규모를 줄였다. 변화가 필요했다. 사업의 고비마다 산을 찾던 강 회장은 히말라야에 답을 묻기로 했다.

그는 엄홍길 대장과 티베트 산속을 걸었다. 그때 등반 장비를 지고 가는 동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검은색 야크였다.
엄 대장이 말했다.“브랜드 이름으로 블랙야크도 좋겠는데요.” 강 회장은 “순간 필이 통했다”고 했다.

강 회장은 등산 장비에서 등산 의류로 사업의 중심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막연히 갖고 있었다. 장고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강태선 회장은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해외는 이미 아웃도어 의류가 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고어텍스 등 고급 소재를 공급하는 회사를 방문해 계약을 맺었다.
강 회장은 신제품을 내놓고 조심스럽게 시장을 타진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패션과 기능을 강조한 블랙야크 등산복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빅5로 성장한 블랙야크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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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사랑한 27세 청년의 창업
강 회장은 늘 “산에 오르듯 경영을 한다”고 말한다. 아웃도어 회사라서만이 아니다. 그의 경험에서 나온 철학이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산 정상에 오르듯, 그의 사업도 그랬다.

1973년, 27세의 제주도 청년 강태선은 종로 5가에 ‘동진산악’이라는 등산전문점을 열었다. 3평짜리 매장에 10평짜리 공장이었다. 등산 인구는 적고 등산용품이랄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청년은 믿음이 있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등산용품 시장은 분명히 클 것이다.’

이후 사명을 동진레저로 바꿨다. ‘자이언트’ ‘프로 자이언트’라는 브랜드로 배낭, 텐트, 침낭 등을 팔았다. 전문 산악인들은 열광했다. 특히 1977년 고상돈 대원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후 등산 붐이 일었다. 강 회장은 “물건이 없어 못 팔 지경이었다”고 회고했다. 붐은 오래가지 않았다. 2년 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터지고 계엄령이 선포됐다. 산은 다시 텅 비었다.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큰 기회가 왔다. 1981년 야간 통행금지 해제다. 야간에도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자 그는 ‘무박산행’ 상품을 개발했다.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 야간산행을 한 후 일요일에 돌아오는 상품이었다. 텐트와 코펠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1980년대 3저 시대도 등산 시장에 불을 붙였다. 초호황 속에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중년들이 대거 등산 인구로 유입됐다. 대기업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선경 ‘레포츠’, 삼성 ‘엑셀’, LG ‘반도스포츠’, 대우 ‘하이파이브’ 등이다. 시장은 금세 포화가 됐다. 브랜드 파워에 밀리던 동진레저는 제품력으로 대기업에 맞섰다. 그러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거치면서 시장이 스포츠용품 쪽으로 옮겨가면서 등산용품 시장에 진출했던 대기업 대부분이 철수했다. 동진레저는 관련 시장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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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선
1949년 제주 출생
탐라대, 동국대 경영대학원(수료)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MBA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서울시 산악연맹 회장
현재 동진레저 대표이사 회장

그러다 최악의 위기를 맞는다. 1992년 전국 산의 취사 및 야영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이번에는 급경사 내리막길. 이때 강 회장은 과감히 등산용품 시장에서 등산 의류로 사업 방향을 바꾼다. 블랙야크 브랜드를 앞세우고다. ‘산에 패션시대가 온다’는 블랙야크 광고는 신선했다. 산에 검은색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이 몰렸다. 검은색은 한동안 등산문화의 트렌드가 됐다. 정상이 손끝에 닿을 듯했다. 하지만 경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호황은 오래 못 가고 외환위기가 터졌다. 다시 깊은 골로 내려갔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외환위기 전 강 회장은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린 중국 투자를 결정했다. 1993년 다롄(大連) 공단에 20만 달러를 투자해 제품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2년 만에 철수했다. 1996년 톈진(天津)에 공장을 다시 세웠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베이징에 블랙야크 1호점을 열었다. 강 회장은 “지금이야 수업료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정신 나간 사람 소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강 회장은 고심 끝에 궤도에 오른 한국 사업은 전면적인 재정비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중국 투자는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블랙야크는 현재 중국 아웃도어 시장 점유율 3위다. 중국 토종업체를 제외하면 해외 브랜드 중 1위다. 강 회장은 “그동안 중국에 많은 투자를 했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파트 10채는 갖다 바쳤다”고 말했다.”진출 초반에는 강남아파트 5채 값, 후반기는 강북아파트 5채”라는 것이다.

20일 만에 침낭 3만 개 제작
현재 블랙야크는 중국 내 백화점 63곳에 입점했다. 대리점은 100곳 정도다. 강 회장은 전 세계 아웃도어 브랜드가 들어와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중국 사업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블랙야크는 중국인이, 특히 지역별로 아웃도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데 많은 수업료를 지급했다”며 “중국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그의 자서전 ?정상은 내 가슴에?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산을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한번 계곡으로 깊이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멀더라도 능선을 돌아가면 포기하지 않고 등반을 계속할 수 있다. 나는 사업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업에 대한 집념과 수완을 잘 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1993년 취사와 야영금지 조치가 내려졌을 때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새 모델 ‘쏘나타’ 출고 기념으로 전 직원에게 침낭을 선물하기 위해 공개입찰을 했다. 일감이 없던 강 회장은 울산으로 내려갔다. 1993년 8월 14일이었다. 그는 “전국에 봉제하는 회사는 다 와 있더라”고 회상했다.
“공개입찰은 8월 14일인데 납기일이 9월 6일이에요. 20일 안에 침낭 3만2000개를 납품하라는 겁니다. 당시 어떤 업체도 감당할 수 없었어요. 경쟁업체가 모두 응찰을 포기하고 돌아갔죠. 하지만 제가 단독 입찰해 낙찰을 받았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지만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듭디다.”

강 회장은 낙찰 받은 조건으로 선금 50%를 요구했다. 원부자재를 한 번에 사들여 여러 공장을 동원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입찰일 다음날은 일요일, 이틀이 지난 1억6000만원이 입금됐다. 1년에 침낭 1만 개를 만들어 팔던 동진레저는 자체 공장만으로는 납기일을 맞출 수 없었다. 전국을 돌며 봉제를 할 수 있는 다른 회사 공장을 섭외해 20일 전쟁에 돌입했고 기어이 3만2000개의 침낭을 공급했다. 강 회장은 “마지막 이틀은 전 직원이 전혀 잠을 안 잤다”며 “납기를 맞추고 맥주파티를 하는데 맥주를 마시다 그 자리에 푹푹 쓰러져 잠이 들더라”고 말했다. 회상에 잠긴 강 회장의 눈가가 젖었다.

산을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한번 계곡으로 깊이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멀더라도 능선을 돌아가면 포기하지 않고 등반을 계속할 수 있다. 나는 사업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대한산악연맹 부회장과 서울시 산악연맹 회장을 지내고 몽블랑(4807m), 초오유(8201m), 안나푸르나(8091m), 칸첸중가(8586m),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한 강태선 회장은 인터뷰 내내 산과 경영을 연결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서 블랙야크는 산으로 치면 7~8부 능선 어디쯤이다.

“세계 아웃도어 빅5 될 것”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800억원, 유통 매장은 180개에 달한다. 블랙야크는 매출 규모에서 노스페이스, 코오롱, K2의 뒤를 잇는다. 특히 지난해 매출이 40% 가까이 급증했다. 강 회장은 “4~5년 전부터 고객 타깃을 전문산악인에서 일반 대중으로 옮기고 일반 대리점을 대폭 늘리면서 지난해부터 매출에 탄력이 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올해 백화점 매장을 총 50곳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8월 중순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을 연 블랙야크는 하반기에 6개의 백화점 매장을 추가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단순한 매장 수 증가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가 높아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올해도 약 40% 매출 성장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올 초 블랙야크를 독립법인으로 분리했다. 대표 브랜드인 블랙야크의 해외영업을 강화하고 후속 브랜드인 ‘마운티아’와 ‘카리모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강 회장은 “동진레저라는 이름으로 글로벌로 가기는 부담이 있다고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랙야크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강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결정이다.
“우리나라 섬유, 패션산업이 발달했다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나요?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 블랙야크 고객을 만들 겁니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1000개 이상 있는데 2015년 내에 빅10안에 드는 게 목표입니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빅5로 서겠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비전이자 넘어야 할 산입니다.”

인터뷰 말미,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여성 산악이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했지만, 최근 ‘카첸중가’ 정상 등정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오은선씨 얘기다. 블랙야크는 2008년부터 오은선씨를 후원해 왔다. 오씨는 블랙야크의 등기이사다.

강 회장은 등정 논란과 관련, “산은 오직 산과 본인만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오은선 대장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철저한 조사를 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대기업 잇따라 진출한 아웃도어 시장 전망

“아웃도어 시장 연 15% 성장할 것”

블랙야크 종로점, 강태선 회장은 37년전 이 장소에 등산용품업체 '동진산악'을 차렸다.

아웃도어 시장은 그동안 급성장했다. 10년 전 2000억원 규모이던 시장은 지난해 2조원대로 컸다. 사실 아웃도어 시장이 어디까지인지 관련 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아웃도어=등산의류’에서 골프, 자전거 등 다른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태선 회장은 “시장 규모가 3조원대라는 것은 좀 과장된 것이고 대략 1조8000억원에서 2조원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시장 1위는 골드윈코리아의 노스페이스다. 그 뒤를 코오롱스포츠와 K2가 잇는다. 블랙야크는 업계 4~5위다.

앞으로 성장세와 관련해 강 회장은 “아웃도어 제품을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가파르게 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수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미 시장은 부익부 빈익빈으로 가고 있다”며 “국내에 대략 60여 개 브랜드가 있는데, 계속 성장하는 브랜드는 10개 이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전체적으로 향후 몇 년은 연 15%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아웃도어 의류와 용품 시장의 비율은 7대 3 정도다.

최근 제일모직, 휠라, 금강제화 등도 아웃도어 시장에 진출했다. 이에 대해 강 회장은 “새로 진입하는 브랜드가 시장에 어필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아웃도어는 일반 패션 시장과 달라, 패션이 개인 소비라면 아웃도어는 일종의 집단 소비 체제”라고 표현했다. 특히 상위 브랜드는 충성고객이 많아 호불황에 민감하지 않으며 따라서 특정 브랜드가 확 뜨거나 주저앉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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