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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퇴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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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로마 교황청 주변에서 통하는 상식, 혹은 농담 두 가지.

1. 바티칸은 교황이 머무르는 로마의 중심지. 초대 교황인 성(聖)베드로가 순교한 곳이다. 제2의 바티칸은? 간돌포(Gandolfo)성(城). 로마 남쪽에 있는 교황의 여름별장이다. 그러면 제3의 바티칸은? 게멜리(Gemelli)병원. 교황이 지난 1일 호흡곤란 증세로 입원한 전용병원이다. 교황은 지금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160여일간 이곳에 머물렀다. 1981년 5월 터키 무슬림 청년의 총격을 받은 교황을 수술한 이래 이 병원엔 24시간 대기조가 만들어졌다. 내과.외과(심장전문).마취.방사선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주치의 레나토 부조네티 이외의 의료진 명단은 기밀. 병원 10층은 교황의 침실.욕실.기도실.식당.응접실, 교황의 분신인 폴란드 출신 비서(대주교)와 수녀 2명이 기거하는 방까지 갖추고 있다.

2.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78년 8월 26일 선출돼 33일 만에 숨졌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후임인 현재의 교황. 25년4개월째 재위 중이다. 재위기간을 알 수 없는 성 베드로를 제외하면 두 번째 장수 교황이다. 그러면 바오로 3세는?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별칭이다. 교황청의 신앙교리 담당 책임자로 병환 중인 교황을 대신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붙여졌다.

'제3의 바티칸'이나 '바오로 3세'란 농담엔 삼키기 어려운 뼈가 담겨 있다. 교황의 부재에 대한 냉소와 그 부작용에 대한 경고다. 교황이 최첨단 장비를 갖춘 응급차에 실려 5.6km 떨어진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병세는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기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호흡장애가 된 것은 92년 이후 앓아온 파킨슨병 때문이다. 입원이 길어진 것은 폐렴 가능성 탓이다. 파킨슨병을 오래 앓아온 노인의 경우 감기가 폐렴으로 돌변하기 쉽다.

문제는 첨단 의술이다. 현대의학은 이미 24년 전 바오로 2세의 생명을 한번 구했다. 게멜리는 중병으로 무력해진 교황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할 것이다. '사실상 부재'가 길어지자 일부에서 퇴위론이 나오고 있다. 교황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 종교적 소명감이다. 과학은 늘 종교에 도전해 왔다. 의술의 발전은 교황이란 성직(聖職)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