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듀오 다니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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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 10면

공자는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라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강유원은 거기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는 느낌, 이거 독이다. 스치기만 해도 죽는”이라고 경계했다. 그런 태도는 군자나 철학자의 엄격함이고 나 같은 소인배는 남들이 몰라주면 서운하고, 인사치레라도 알아주면 기쁘다. 그러니 죽더라도 그 독에 한번 스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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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은 에어컨을 틀지 않아서 몹시 더웠다. 게다가 내 옷차림은 당직 근무용이라 재킷에 넥타이까지 맨 상태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하고 셔츠의 첫 단추를 풀었다. 한결 시원하다.

나는 독자에게 받은 메일을 가방에서 꺼내 읽는다. 부끄럽지만 나는 독자 메일을 프린트해서 갖고 다니며 가끔, 아니 자주 읽는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주로 격려의 인사가 대부분이다. “칼럼 잘 읽고 있다. 선생 칼럼을 가장 먼저 읽는다. 나는 신문을 앞에서부터 보는 사람이지만.” 가끔 질문도 받는다. “둘째가 다녔다는 가톨릭재단의 대안학교가 어디냐?” “마늘을 어느 정도 비율로 넣어야 하느냐?” “안다 형이 혹시 본인 아니냐?” 답할 수 없는 질문도 받는다. “글이 잘 안 써질 때 선생은 어떤 해결책을 쓰느냐?” 그저 적당한 호칭이 없어서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일 텐데 나는 정말 선생이라도 된 기분이다. 선생은 버스 안을 둘러본다. 승객이 모두 독자처럼 보인다.

내 앞쪽에 선 여성들이 나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서로 눈웃음을 주고받으면서. 독자일까? 아니면 저 예쁜 아가씨들이 내게 관심이 있는 걸까? 설마? 아저씨인데. 그래도 아저씨는 괜히 신경이 쓰이고 가슴이 설렌다. 아가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책을 꺼내어 읽는 척한다. 사실 이런 경우를 대비한 게 아니라면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처럼 두껍고 무거운 책을 가방에 넣어 다닐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책을 편다. 720쪽. 데카르트 편이다. “그는 날씨가 몹시 추워 아침에 난로 속으로 걸어 들어가 온종일 명상하며 거기에 머물렀다.” 데카르트도 나처럼 추위를 많이 탔구나. ‘난로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는 표현은 문학적이다. 눈은 문장을 읽고 있지만 내용은 이해되지 않는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기 때문이다. 몇 자 안 읽고 고개를 들어 콩밭을 본다. 그 순간 나를 쳐다보던 한 아가씨와 눈이 딱 마주친다.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 3초 만 지속되어도 기분이 묘해지는 법이다. 그것도 이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10초는 지난 것 같다. 나를 아는 사람인가 싶어 “혹시…”라고 입을 여는데 그 아가씨가 말한다.

“아저씨, 듀오 다니죠?”
역시 독자다. 나는 유명하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는 느낌이란 이처럼 황홀한 독이다. 나는 좀 더 천천히 독을 음미하고 싶다.
“네, 그런데 어떻게?” “아저씨 가슴에 명찰이.”
명찰이라니? 당직 때 회사 로고가 새겨진 명찰을 다는데 그걸 그대로 단 채 퇴근한 것이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뭐….”
“거기 대학생도 가입할 수 있어요?” “네, 그렇죠.”
아가씨들은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고 하더니 인사도 없이 내려버린다. 귀까지 빨개진 중년의 아저씨만 남겨놓고 말이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우유부단하고 뒤끝 있는 성격이라 평한다. 웃음도 눈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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