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정원 진상규명 선정 기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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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제 국가정보원이 진상규명이 필요한 과거사 7건을 확정 발표했다.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불법적인 폭력사건이나 의혹이 있는 사건들이다.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서는 진실이 밝혀져야 할 사건들이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진실은 밝혀지고 만다'는 역사정의를 위해서도 이러한 조사는 필요하다. 단순히 진실을 밝히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기회로 활용될 때 역사적 의미도 더해질 것이다. 조사위 측도 정보기관의 인권침해 및 월권, 탈법행위 등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진상규명 대상 사건이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됐는가 하는 것에서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정수장학회가 선정된 것은 납득이 안 간다. 그 사건이 과연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가 저지른 많은 비행 가운데 꼭 해명돼야 할 대상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개인재산을 부당하게 빼앗은 것이라면 그 문제뿐이겠는가. 그보다 더 악랄한 일을 저질렀던 곳이 바로 중정이고 안기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조사가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당장 한나라당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표가 지적한 대로 과거사 조사는 또 다른 과거사의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조사 대상의 선정 기준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사건의 경우도 정치적 의심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는 경찰 등 다른 국가기관도 별도로 규명작업을 벌일 예정이고 국회도 과거사 문제를 다루기로 되어 있다. 그럴 경우 중복조사의 가능성마저 있는 데다 자칫 사회 전체가 과거문제에 함몰되는 상황이 벌어질 우려도 높다.

이번 조사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 묻혔던 과오들을 드러내 정리하고 넘어감으로써 성숙한 사회로 진입하자는 목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