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돈 = 행복 아닌데 … ‘4억녀’ 소동의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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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같은 날 미국에서 행복과 돈에 관련된 흥미 있는 분석 결과가 보도됐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 프린스턴대 대니얼 카너먼 교수와 앵거스 디턴 교수가 2008∼2009년 미국인 45만 명을 대상으로 갤럽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연간소득 7만5000달러(약 8700만원)까지는 소득이 늘수록 행복감도 커지지만 그 이상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7만5000달러면 미국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약 1.5배 남짓한 수준이다. 한국을 같은 기준으로 따져보면 약 3만 달러, 구매력 평가나 드러나지 않은 경제를 감안해 30% 정도 올려잡는다 해도 4만 달러 수준, 원화로 4500만∼5000만원쯤 되는 돈이 아닐까 싶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행복을 위해 필요한 돈의 평균값 최고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생각만큼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가난이 불행을 야기한다는 말은 대체로 맞다. 앞서의 분석에서도 이혼한 사람들 중 월소득 1000달러 이하는 51%가 슬프거나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답한 반면, 3000달러 이상은 그 비율이 24%로 줄었다. 의식주나 교육·의료 등 필요한 것을 갖출 수 없는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일정 수준까지 소득과 행복이 비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갖춰졌다고 원하는 것이 없는 건 아니다. 옷장이 명품 가방과 옷으로 그득 찼더라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것엔 끝이 없고 결코 채울 수 없다. 미국인들이 제시한 7만5000달러가 디턴 교수 설명대로 ‘친구들과 놀러 나가는 등 기분 좋게 만드는 무언가를 하는데 돈이 큰 문제가 안 되는 수준’이라 본다면 그들은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의 경계를 상당히 현명하게 짓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언론인 그레그 이스터브룩이 말했듯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정말로 원하는 것들 대부분-사랑·우정·존경·가족 등-은 값을 매길 수 없고, 파는 물건도 아니니 애당초 돈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진보의 역설』 에코리브르, 박정숙 옮김).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린 쉽게 잊고 산다. 가끔은 미래에 집착해-때로는 과거에도- 외려 중요한 현재를 잊고 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앤절리나 졸리가 성공에 집착하는 방송인 역으로 나왔던 영화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과거는 히스토리, 미래는 미스터리,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그래서 프레젠트(present, 선물)라고.

끈덕지게 내리던 비도 그치고 새벽녘엔 이불을 끌어 덮을 만큼 더위도 가셨다. 추석도 코앞이다. 이 좋은 계절, 혹 우리가 정작 원하는 것들은 잊고 살지 않았는지, 앞뒤 것·남의 것 보느라 지금의 나에겐 눈 감은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박태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