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벼슬이 뭐기에 … 표절, 대리시험까지 저지르던 양반님네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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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일하지 않았다.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림은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 ‘벼 타작’. 노동하는 노비들과 그 모습을 방관하기만 하는 양반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신분제 사회를 한 눈에 드러내주는 풍경이기도 하다. [돌베개 제공]

왕조의 흥망성쇠나 전쟁만이 역사는 아닙니다. 문화며 일상도 역사가 됩니다. 이는 물론 우리네 살림이 피면서 옛 기록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덕분입니다. 그 중 조선에 특히 초점이 맞춰집니다. 기록이 많은 데다가 그 독해가 가능한 한문학자들이 사학자나 국문학자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해 준 덕분에 흥미로운 책이 쏟아집니다. 그 중 두 권을 골라봤습니다.

 옛 그림속 양반의 한평생
허인욱 지음, 돌베개, 287쪽, 1만7000원

조선시대 과거제와 관련해 ‘호명법’이라는 게 있었다. 채점관이 이를 확인하지 못하게 이름 위에 종이를 붙여 가리는 것이다. 점수를 채점하는 이가 응시자의 이름을 보게 되면 아무래도 세력 있는 집안의 자제의 점수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종이를 들추고 이름을 볼 수 있는 결점이 있었다.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것이 ‘봉미법’이다. 인적사항을 적은 부분을 말아 올리고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어 이름을 가리는 방법이다.

이것은 거꾸로 그만큼 부정이 많이 저질러졌다는 방증이다. 사대부가 먹고 살 방도가 오로지 관직에 나가는 길뿐이었기 때문이다. 2품 이상 고위 관료의 자제에게 과거 시험을 치르지 않고 벼슬길에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음서’가 있기는 했지만, 인재선발의 가장 중요한 제도는 역시 ‘과거’였다. 오죽했으면 옛날 이야기에서 나그네는 한결같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길로 묘사됐을까. 저자의 말마따나, 호랑이를 만나는 위험도 불사하게 만드는 게 과거였다.

과거에 목숨 건 사람들은 ‘표절’과 ‘대리시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명종 때 이정빈이라는 인물은 과거공부도 하지 않고 표절로 장원을 하고 중요한 벼슬을 역임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어 결국 물러났다. 같은 때 여계선이란 자는 문사 차천로가 글을 대신 지어줘 장원을 했는데, 후에 이 사실이 탄로나 아예 과거에서 이름이 삭제됐다.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에는 ‘늙은 선비들이 과거장 새끼줄 망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합격을 애걸하는 모습이 볼 만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결국 ‘벼슬’에 대한 집착이었다. 특히 사간원·사헌부 등의 청직(淸職)에서는 언관의 자질 문제가 항상 중요한 관심사였다. 지금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구한말 조선에서 이탈리아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카를로 로제타는 “양반 사람들의 중요한 특성은 어떠한 종류의 일도 하기 싫어하는 것”이며 “이들 양반을 직·간접적으로 부양할 의무를 지고 있는 대중에게 양반이란 존재는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기록했다.

조선 양반의 일대기를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옛 글과 그림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훑어본 이 책은 우리 사회상의 변화를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제는 사라진 제도와 풍습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뉴스와 겹치는 이야기들이 놀라울 만치 많기 때문이다.

‘출생에서 돌잔치까지’ ‘아이들은 서당에 다녔네’‘인륜지대사, 혼례’ 등의 순서로 이야기로 풀어나가지만, 정작 주목을 끄는 다른 큰 주제는 적장자 중심의 사회에서 희생을 겪은 양반사회의 여성의 삶이다. 순조 때 지어진 기담집 『계서야담』에 나오는, 청상과부가 된 딸을 재혼시킨 재상의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다. 출가한 지 1년이 안돼 남편을 여의고 청상과부로 지내던 딸을 가엾게 여긴 아버지가 문하에 출입하던 무인에게 딸을 부탁해 밤에 북관(함경도)으로 떠나 보냈다는 얘기다. 당시 사대부집 여성은 재혼이 거의 불가능했음을 보여주는 얘기다. 부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름다운 풍속이지만, 실제로 양반의 삶은 여성과 농민, 노비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 역시 과거제의 희생자였다.

그런데 저자는 하필이면 왜 다수를 차지했던 농민이나 천민의 얘기가 아니라 양반의 얘기를 주제로 택했을까. 저자 역시 지극히 평범한 ‘소인’의 일상을 말해보고 싶었다면서 말이다. 정작 자료를 뒤져보니 이들에 대한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들에 관해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배층이고 조선 사회를 유지한 핵심이던 양반에 초점을 맞춰 조선시대 일상의 풍경을 재구성한 이유다.

언뜻 보면 너무도 익숙한 얘기들을 모아놓은 듯 하지만, 미세한 필치로 그려진 이야기에 빠져들다가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초상이다. 저자는 당시의 기록을 통해 당시 제도와 풍경들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지 않았다. 주장이 너무 많은 사회에 살고 있어서 그럴까. 그래서 더 편안하게 읽히고 생각할 거리도 은근히 많이 남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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