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 학력 진실 공방 끝없는 집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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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멤버 타블로(30·본명 이선웅·사진)의 스탠퍼드대 졸업 학력을 둘러싼 공방이 수그러들 줄 모른다. 지난달 중순 타블로 측은 비방글을 올린 네티즌 22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러자 일부 네티즌도 대검찰청 웹사이트에 의혹을 밝혀달라며 민원을 잇따라 제기했다. 지난해 말 일부 네티즌이 제기한 학력 위조 논란이 점점 커져 법정 다툼으로 비화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병리학적 현상의 하나로 주목하고 있다.


14만여 명. 타블로에 대한 각종 공방이 펼쳐지는 네이버의 카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12만8000여 명)’와 ‘타진알(타블로의 진실을 알려드립니다·1만2000여 명)’의 총 회원 수다.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도 아닌 연예인의 학력을 놓고 14만여 명이 공방을 벌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타진요 회원들은 타블로의 학력 진위 여부에서 시작해 이젠 표절, 이중 국적, CIA 인턴 지원 등 광범위한 의혹을 제기한다. 타블로 옹호 입장인 타진알은 이들이 제기한 의혹을 다시 반박한다.

타진요의 한 스태프는 “명문대 선호 현상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타블로는 스탠퍼드 석사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의혹이 일자 많은 사람이 진실을 궁금해 하는 것”라고 회원 12만 명이 모인 배경을 설명했다. 대중이 그의 음반·공연·소설(『당신의 조각들』)에 돈을 지불한 데는 타블로의 학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서울대 최진영(심리학) 교수는 “학력을 한 번 쌓으면 그 사람의 성취 정도와 상관없이 인정받는 사회에 대한 반감이 타블로라는 유명 인사의 의혹과 맞물려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 정당화, 자기 방어 본능의 일종=그러나 연세대 황상민(심리학) 교수는 “학력 위조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슈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이 진실이냐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인기 가수가 예쁜 영화배우와 결혼했고, 부모가 부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 남들은 가기도 힘든 스탠퍼드에서 3년 반 만에 학·석사를 마쳤다는 사실을 자신의 기준에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이들이 타블로에 대해 ‘분명 뭔가 문제가 있을 거다. 캐보자’는 식으로 자기 정당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타블로 관련 의혹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타블로는 성적표와 학교 졸업 확인서 등의 증거를 제시했다. 그와 함께 스탠퍼드대를 다녔다는 친구들이 찍은 사진들도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러나 네티즌은 위조·매수 의혹을 꼬리물기 식으로 제기하고 있다. 타진요 카페에는 타블로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어머니·형·누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게시판이 따로 있다.

일부 전문가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으로 이를 설명한다. 38개 항목으로 된 ‘토론의 법칙’은 자신이 옳고 그른지에 상관없이 토론에서 무조건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역설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재빨리 쟁점을 바꾼다 ▶상대방에게 유리한 논거는 순환논법이라고 몰아붙인다는 등의 내용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김봉섭 박사는 “공개 석상에서 누군가를 일대일로 비난하면 동조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 알 수 없지만 인터넷 카페에선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12만 명이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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