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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CCTV 딴 데 보거나 고장 … 초등생 교내 성폭행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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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광주광역시에서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초등학생이 학교 건물 안에서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수철과 조두순 사건 이후 경찰과 교육계에서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폐쇄회로TV(CCTV)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사건 직후 성폭행당한 피해 아동의 인적 사항도 파악되지 않아 경찰 수사는 늦어졌다.

22일 오후 2시24분 광주시 동구 모 초등학교 정문 앞. 20대 후반의 남성이 교문에 들어섰다.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박모(28)씨는 교문 옆 오른쪽에 있는 유치원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성거렸다. 학교 본관 건물에서 이 모습을 본 경비원 김모(74)씨는 학교에 놀러 온 젊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구나 정도로 여겼다. 10여 분쯤 뒤 학교 근처에 사는 A양(12)이 정문에 들어섰다. 정신지체장애(2급)가 있는 A양은 집 주변에 마땅한 놀이시설이 없어 가끔 찾는다. 이날은 마침 방학 중이자 일요일이어서 운동장과 학교 주변엔 별다른 인기척이 없었다. 박씨는 “학교를 소개시켜 달라”며 A양에게 접근했고 A양이 달아나자 손목을 낚아채 본관 건물 뒤쪽으로 끌고 갔다. 교문에서 본관 건물까지 150m 거리였으나 제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 상황을 감시해야 할 CCTV 3대 중 1대는 고장 나 작동하지 않았고 나머지 2대는 건물 양 귀퉁이를 찍고 있었다. 정작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현관 쪽을 찍는 CCTV는 없었다. 범인 박씨는 학교에서 1.5㎞ 떨어진 한 새마을금고 CCTV에 촬영됐다.

박씨는 A양의 비명소리를 듣고 나온 경비원 김씨의 고함소리에 놀라 학교 담장을 넘어 달아났다. 김씨는 옷이 벗겨진 A양을 추스른 뒤 “다치지 않았느냐. 빨리 집에 가라”고 귀가 조치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 같은 상황을 단순 사건으로 보고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또 피해를 당한 아이의 신상이나 연락처도 받아 놓지 않았다. 학교당국의 방범교육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0여 분 뒤 김씨는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으나, 경찰은 A양을 찾는 데 3∼4일이 걸렸다.


광주동부경찰서 김춘수 형사과장은 “피해 어린이를 찾기 위해 학교 근처 지역 반상회까지 돌았다”며 “사건 발생 초기에 CCTV 자료는 물론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경비에 대한 학교 측의 초기 대응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6월 서울 영등포의 한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 당시 전국 초등학교에 CCTV를 전면 설치하고 이를 통합·관리하는 ‘통합관제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현재 전국 공공기관의 CCTV는 24만여 대로 방범, 주차 단속 등의 용도에 따라 담당 기관과 부서가 나눠져 제각기 관리돼 왔다. 광주시교육청과 해당 학교 측은 평소 경비원과 학생 등을 대상으로 성범죄 관련 교육을 했으며 CCTV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찰은 29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박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광주=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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