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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손끝에서 희미한 과거는 역사가 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1호 16면

백제금동대향로가 1993년 12월 진흙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되어 백제문화 수준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대개의 발굴 유물들은 형태는커녕 상태도 좋지 않다. 화려한 신라왕관도 검은 흙 속에서 산산이 부서진 채 나왔다. 심하게 부식된 금속 유물도 표면의 녹을 섬세하게 벗기고 남은 부분을 보존처리하면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된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 34년간 유물 1만7000점 되살려

유물 보존처리는 금속·화학·목공예·자기 등 다방면에 걸친 전문가들이 또 다른 예술혼을 발휘하는 현장이다. 그렇지만 유물 보존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변형하지 않고 최대한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복원을 했다면 복원 부분을 알아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 토기·도자기 담당인 황현성 박사는 말한다.

장연희(33)·안지윤(28)·최주연(32)(사진 왼쪽부터)씨는 서화유물보존처리 전문가들이다. 장씨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것은 찰방소공은연지도(察訪蘇公恩宴之圖)로 166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현종은 양로정책을 펴면서 관료의 노부모에게 물품을 하사했는데 시종관을 지낸 장성부사 소두산의 아버지 소동명(당시 79세)에게 하사품이 전달됐다. 하사품을 받은 뒤 왕의 은덕에 감사하는 연회를 열고 이를 기념해 그림을 제작한 것이다. 이 유물은 족자 형태였기 때문에 둘둘 말아 보관하는 과정에서 꺾이거나 찢어진 부분이 생겼다. 그래서 손실된 부분은 종이를 덧대 복원하고 전면의 오염물은 붓으로 털어내거나 증류수를 이용해 제거한다. 지난 3월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9월에 완료될 예정이다.

고서화에 비해 근대에 제작된 지도나 신문은 종이의 특성상 쉽게 변한다. 안지윤씨가 작업하고 있는 조선·만주철도기차 약도 및 일본지도와 최주연씨가 담당한 영국 ‘이브닝 크로니클’ 1959년 4월 28일자 신문이 여기에 해당된다. 중성지인 한지에 비해 많이 산화되고 경화된 상태다. 특히 신문은 지질도 좋지 않아 누렇게 변했고 경화된 가장자리는 부서졌다. 따라서 탈산(奪酸) 작업을 통해 종이가 중성이 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현재는 지면에 묻은 이물질을 붓을 이용해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두 작업 모두 지난 6월부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은 1976년 별도 직제 없이 담당직원 2명으로 출발했다. 현재는 서화·도자·금속 등 각 분야별 전문인력 총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11개 국립지방박물관에도 최소 1명에서 최대 3명까지 총 14명이 근무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존처리 업무를 시작한 1976년부터 2009년까지 약 1만7000여 점을 처리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보존처리 실력은 유화 등 특정 부문을 제외하고는 외국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조사분석과 처리기능이 한곳에서 진행되기에 효율이 좋다. 한 단계 더 높은 유물처리를 위해서는 첨단 기기 도입이 필요하고 이를 활용할 전문인력이 더 보강되어야 한다고 김경수 보존과학팀 대외홍보담당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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