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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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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선시대에는 원님재판이란 게 있었다. 고을 사또가 관아에 끌려온 죄인(현대적 의미의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향해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고 일단 호통부터 친다. 증거가 있든 없든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면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로 치라”는 명령을 내린다. 수청 들기를 거부한 춘향이에게 변 사또가 “네 죄는 네가 알렷다”라며 수작을 걸던 그 장면이다. 이는 자복(自服)을 얻기 위한 절차였다. 행정관인 동시에 검사이자 재판관의 역할을 맡았던 사또를 비롯한 지방 관리에게 자복은 최상의 수사·재판 기법으로 통했다.

그래서 조선의 형사재판을 자복 필수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자복은 서양에서 법정증거 개념의 자백(voluntary confession)과 가깝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에는 자복이 없으면 판결도, 형벌도 없었다. 자복은 죄를 범한 어리석은 백성이 자기 죄를 털어놓고 뉘우치도록 하는 방편이었다. 반대로 죄상이 명백한데도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지 않으면 매로 다스려 도덕성을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봤다. 물론 춘향의 예에서 보듯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범죄 행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피고인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판결에 승복하도록 하는 장치가 자복이었던 셈이다.

자복과 반대되는 개념의 묵비권(默秘權)은 17세기 초 영국에서 청교도 탄압과 그들의 저항 속에서 탄생했다. 당시 청교도는 신의 제재라는 미명 아래 고문과 자백을 강요당한 뒤 이를 증거로 처벌당했다. 이에 강제심문철폐 운동에 나서 “누구든 자신이 처벌당할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진술 거부의 권리를 쟁취했다.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미국은 1791년 수정헌법에 명문화했고, 이후 각국은 인권의 연장선에서 묵비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확립했다. 우리나라 헌법도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북한에서 돌아온 한상렬 진보연대 상임고문이 당국의 수사에 맞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명박 살인 원흉” “김정일 장군님” “(남한 정부는) 괴뢰 도당” 등 수없는 궤변과 망언을 쏟아낸 마당에 새삼 묵비권을 행사하는 모양새가 어색하다. 북한 행적이 세상에 적나라하게 공개된 만큼 숨길 것도 없을 터다. 오히려 자복하고 법의 심판을 받는 게 더 떳떳하지 않겠는가.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