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총경에 도피자금 준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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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지난 4월 미국으로 도피한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최성규 총경에게 지난달 퇴직금 9천8백여만원이 지급됐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핵심 경찰 간부였던 崔전총경의 해외 도피 과정도 의문이지만 수배된 피의자 신분으로 거액의 퇴직금까지 받았다니 그를 둘러싼 의혹이 한층 증폭되는 느낌이다. 과연 이 정부에 그를 검거할 의지가 있는지, 권력층에 그의 비호세력이 있는 게 아닌지 새삼 의심스럽다.

崔전총경은 김대중 대통령 아들 홍걸씨 비리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자 달아난 현 정권 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한명이다. 당시 그는 청와대를 자주 드나든 것으로 밝혀졌고 최규선씨 등과 심야 대책회의를 한 것까지 드러났었다. 또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 무마 명목으로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서 수천만원 상당의 주식을 받은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파면됐으며 인터폴 적색 수배 상태였다.

퇴직금 지급은 규정대로 처리해 법적으로 잘못이 없다는 게 경찰청의 해명이다. 퇴직금은 본인만 수령이 가능하므로 필적 감정을 하고 가족과 통화하는 등 확인 절차를 거쳐 지급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정부가 범죄인 인도요청을 한 상태로 崔전총경 주소지를 미국 측에 통보하고 검거를 요청했으니 할 만큼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 없는 발뺌에 불과하다. 어떤 명목이건 수배된 용의자에게 거액을 준것은 도피자금 제공이고 도피 방조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퇴직금 지급을 미뤄가며 그의 검거나 수사 단서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도 규정을 강조하는 경찰의 어설픈 설명은 검거 의지는커녕 그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하는 꼴이어서 우스꽝스럽고 기가 막힐 지경이다. 특히 법질서 확립과 범인 검거 주관 부서인 경찰의 이같은 처사는 직무유기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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