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교체 시급" 동교동계 퇴진 겨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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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선의 후(後)폭풍이 민주당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 조순형(趙舜衡)의원 등 쇄신파는 22일 당의 발전적 해체와 부패 책임자 인책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23일 선대위 전체회의와 최고위원회의, 26일 의원총회를 열기로 해 이 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예상된다.

이들 개혁 성향 의원들은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의 승리는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아니다"고 규정했다. 오히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낡은 정치를 청산하라는 민의"라는 주장이다.

특히 이들이 무게를 둔 것은 인적 청산이다. 당 정치개혁추진위원장인 신기남(辛基南)의원은 "사람의 교체가 가장 시급한 일이며 과거 인물을 그대로 두면 안된다"고 했다. 이재정(李在禎)의원도 "흔들릴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현 지도체제는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은 '노무현식 정치개혁'의 시작으로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盧당선자와 갈등을 보인 동교동계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盧당선자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신기남·정동영(鄭東泳)·천정배(千正培)·추미애(秋美愛)의원 등 이른바 '쇄신파'들이 전면에 나서 이런 관측을 낳게 했다. 이들은 정풍(整風)을 주장하며 동교동계를 공격해왔다. 선거 중엔 '탈(脫)DJ(김대중 대통령)'를 주창했다. 盧당선자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누가 말려서 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盧당선자가 당 개혁부터 손대는 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 우선 동교동계 중심의 민주당을 '노무현당'으로 바꿔놓을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盧당선자는 당내 지지기반이 약하다. 게다가 당헌·당규는 당정(黨政)분리가 명시돼 있다. 과거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던 때와 달리 盧당선자는 당무에 관여할 근거가 약하다. 그렇다고 세력도 없이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고 盧당선자 측은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 결국 "힘과 명분이 있는 초반에 밀어붙이자"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대선 과정에서의 앙금도 깔려 있는 것 같다. 동교동계의 호남 출신 중진들과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소속 탈당파 의원들은 盧당선자와 갈등을 보였다. 그의 지지가 급락하자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대표를 선호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보여왔다. 한화갑(韓和甲)대표의 경우 "당비 한푼 낸 적 없다"고 盧당선자를 공격했다.

당개혁 주장에는 속히 2004년 총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盧당선자는 취임 1년2개월 후에 총선을 치른다. 이 17대 총선은 盧당선자의 임기 중·후반의 성패를 좌우할 대사다. 여기에 盧당선자는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총선 승리를 통해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를 바꾸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개혁작업에서 대선기간 중 盧후보를 지지한 개혁적 국민정당 등 진보그룹과의 통합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당 해체와 지도부 교체 요구는 계파 간 충돌로 이어질 전망이다. 신·구세력 간 헤게모니 다툼이나 갈등이 노골화하면 개혁보다는 분열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아직도 동교동계는 당내 최대 계파다. 그 뒤엔 호남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끊임없이 승부수를 던져온 盧당선자의 첫 정치실험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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