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지 구인광고 '뻥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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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 초 대학원을 졸업한 金모(31)씨는 지난 9월 생활정보지에서 C사(社)의 '관리직, 월 2백20만원'이란 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C사는 金씨에게 방문판매 업무를 시켰다. 연고 위주로 제품을 팔고 있는 金씨는 "하나라도 더 팔려고 친척·친구들을 찾아다니고 있다"며 "취직하기가 어려워 쉽게 그만둘 수도 없다"고 말했다.

취업난을 틈타 생활정보지의 허위·과장 구인광고가 기승을 부리며 구직자들을 울리고 있다. 매장관리·관리직·간부직 등을 내세워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구직자들을 모집한 후 다단계 판매 등을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리직이라더니…"=건설업계에서 일해온 朴모(47·서울 종로구 숭인동)씨는 지난 8월 새 직장을 구했다. 월급 1백90여만원에 상여금·퇴직금도 보장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생활정보지에서 우연히 본 W사의 '대리점 관리업무, 월급 2백60만원'이라는 구인광고가 朴씨를 현혹했기 때문이다. 朴씨는 혹시나 영업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돼 인사 담당자에게 몇번이나 확인한 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하지만 입사 후 朴씨에게 맡겨진 일은 공기청정기 등 제품의 방문판매 업무였다. 월급은 아예 없었고 판매액의 15%를 수수료로 받을 뿐이었다.

항의하는 朴씨에게 회사측은 몇달간만 매출을 잘 올리면 부장으로 승진해 직접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했다. '이 나이에 직장을 버리면 큰 일'이라는 절박감에 朴씨는 한달 동안 친척·친구 등에게 1천만원어치를 팔고 자기 카드로도 1천만원어치를 결제하는 등 실적 올리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부장으로 승진한 朴씨는 또다시 회사에 속은 것을 알게 됐다. 부장이 됐는 데도 팀원들이 판매한 액수의 2.5%만 수당으로 받을 뿐이어서 월급이 1백만원도 되지 않았다.

朴씨는 "새로 입사한 직원이 친·인척을 동원, 정수기 등을 최소한 다섯대는 팔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W사측은 "각 지역 영업소 차원에서 허위광고를 하는 일이 많아 계약을 해지하는 등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허위 구인광고는 직업안정법에 위반돼 5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지만,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화를 걸어보면 구직자의 인적사항을 먼저 물은 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얘기를 해주지 않고 면접도 제3의 장소에서 하는 등 철저히 경계해 위법 사항을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노동부 담당자도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등에서 엄청난 물량으로 쏟아져나오는 구인광고 하나하나에 대한 위법 여부를 제대로 단속하려면 담당공무원뿐 아니라 전 경찰력을 동원해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허위 구인광고에 대해서는 단속보다는 피해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만 처리하는 형편이다. 노동부는 지난 한해 동안 5천7백여건의 신고를 받아 30건을 형사고발하고 1백50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취업 사기 피해 신고는 시·군·구 취업정보센터나 노동부 고용안정센터(1588-1919)에서 받고 있다.

서울시 고용안정과 배진섭(裵鎭燮)과장은 "혹시 피해를 봐 고발할 때를 대비해 정확한 근무조건 등의 계약 사항을 서면으로 받아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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