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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노무현시대]당선자현안과제-경제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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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공교롭게도 역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시기의 경제는 늘 어려웠다.

전두환 대통령은 2차 오일쇼크, 노태우 대통령은 민주화에 이은 노사분규, 김영삼 대통령은 내수 과열의 후유증,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라는 짐을 각각 안고 취임했다. 이번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겉보기에는 연 5∼6%대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속은 편치 않다.

무엇보다 경제 거품을 걷어내는 것이 발등에 불이다. 현재의 경기 거품은 세계 경제가 침체되는 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내수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 돈을 풀다가 생긴 것이다. 내년 초에 이를 잘못 처리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거품의 두 축은 가계부채와 부동산이다. 가계부채는 4백30조원(가구당 3천만원선)을 넘어섰고, 이의 후유증으로 신용불량자가 2백60만명에 이르고 있다. 부동산의 경우 아파트 값을 잡으면 주상복합이 오르고, 서울을 잡으면 수도권으로 투기자금이 몰리는 등 '두더지 잡기'가 이어지고 있다.

거품을 근본적으로 잡으려면 시중의 돈줄을 조여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는 데 새 정부의 고민이 있다. 돈줄을 조이는 것은 워낙 인기없는 정책이어서 대통령 당선자의 굳은 결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통상 대통령 당선자들은 집권 초기 가시적인 성과에 연연해 경기부양 기조를 택하곤 했다.

게다가 최근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가 주춤해지는 데다 대외 여건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돈줄을 조이다 자칫 부동산 가격 급락→부동산 담보대출 부실화→금융기관·가계 부실화→소비 둔화·경기 침체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이때문에 대통령 당선자는 지금부터 거품을 줄이는 방법과 속도를 놓고 고민해야 할 처지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지 않도록 연착륙을 시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로 넘어가는 금융 현안도 여럿 있다. 당장 조흥은행 매각 문제가 걸려 있다. 신한지주와 서버러스컨소시엄 두 곳이 인수를 희망하고 있으나 조흥은행 노조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정치권 스스로 대선을 의식해 조기 매각에 반대해온 터라 앞으로의 매각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하이닉스 반도체와 현대투신증권의 처리도 고스란히 새 정부의 짐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두 기업 모두 현재 매각 협상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으며 앞으로 진행 상황을 예측하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가스·발전·철도 등 공기업 민영화와 주택공사·토지공사의 통합 문제도 새 정부의 과제로 넘어가게 됐다.

이밖에 현대상선의 4억달러 대북 지원설과 관련, 그동안 금융당국이 계좌 추적을 거부해 왔으나 새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의혹을 해소해야 할 부담을 지게 됐다.

김기환 골드먼삭스 고문은 "국제금융센터를 포함해 동북아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마련한 경제자유구역 구상을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지도 새 정부가 당장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농산물시장 개방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최양부 전 청와대 농림해양수석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분야 세부협상의 시한이 내년 3월인 만큼 대통령 당선자는 서둘러 대응 시나리오를 짜고, 중국·미국·일본·유럽연합(EU)·태국 등을 상대로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고현곤·정철근 기자

hkk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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