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간판은 시각 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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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하나로 세계인의 입맛을 꿰뚫은 맥도널드 체인점은 빨간색 간판으로 유명하다. 미국 뉴욕부터 중국 베이징까지, 어느 도시에 가도 새빨간 그 표지판을 따라 가면 한끼를 때울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고베시는 다르다. 디자인에 민감한 이 유서 깊은 고도(古都)에서는 간판 색깔을 철저히 규제하는 바람에 천하의 맥도널드도 빨강을 내리고 분홍빛 옅은 색깔을 쓸 수밖에 없었다. 고베를 찾는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남기는 디자인 전략이다.

가게 위치를 알리고 구매욕을 자극하는 간판은 이제 도시환경을 가늠하는 중요 인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간판 분야에서 한국은 어느 수준일까. 20일부터 내년 1월 12일까지(1월 6일 쉼)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간판과 디자인'전은 우리나라 도시들의 간판문화를 점검하는 자리다.

전시를 주관하는 디자인연구소 ㈜얼트씨는 한국의 거리간판이 이미 광고와 표식의 기능을 지나쳐 시각공해가 돼 버렸다는 진단을 내렸다. 도시미관을 위해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다.

전시는 디자인·색채·관련 조례에 대한 연구는 물론, 모범적 간판 모델을 내놓는 등 구체적인 정보 제공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장 울타리를 넘어 간판을 제작해야 하는 점포주와 간판 디자이너에게 실용적인 기획전인 셈이다.

전시는 크게 네 분야로 나눠 구성됐다. '보기 좋고 알기 쉬운 간판'에서는 걸어가는 사람이 무심코 사물을 보는 시간이 0.3초인 데 착안해 그 눈깜짝할 새에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지각 효과를 실험한다.

'아름다운 거리의 빛깔'은 고베시가 채택하고 있는 색채 제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우리 도시의 색깔을 편안하게 가져갈 것인가, 환경색채분석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간판의 공공성' 분야에서는 현행 옥외광고물 관리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음향 표시체계를 알아봤다.

마지막으로 '간판에 바란다'에서는 시민과 관계자들이 기대하는 바람직한 간판문화를 인터뷰 화면으로 제시한다.

20일 오전 9시30분부터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문화사랑방 대회의실에서는 '우리의 간판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도 열린다. 02-580-154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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