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여중생 사망 사과·北核 언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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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3일 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통해 여중생 사망 사건과 북한 핵 문제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한국 내의 반미 기류와 북한의 핵 재개발 선언 사태를 수습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우선 金대통령에게 여중생 사망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유감(deep sadness and regret)을 표시했다. "미국민들은 한국민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한·미 동맹 관계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다. 이는 최근의 촛불 시위 등이 불평등한 한·미 관계에 대한 한국민의 자존심 때문이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간접적으로 사과 의사를 표시했지만 한국 내 반미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고,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도 부시의 직접 사과를 촉구했었다. 특히 14일에 한국에서 전국적인 시위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한 직접 사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지난 9일 스티븐슨과 이노우에 미국 상원의원을 접견하면서 한국민들의 반미 감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하루 뒤인 지난 10일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에게도 이런 뜻을 전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은 이 같은 한국 측의 분위기가 전달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 재개 선언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을 자신의 입으로는 처음으로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한·미 양국이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는 것과,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대응이 이라크와는 다를 것임을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미국이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김정일 위원장이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면서 金위원장을 언급한 배경도 주목된다. 이는 북한의 최근 움직임이 '전쟁 불사'라기보다는 북한 체제를 보호하고, 미국으로부터 지원과 대화를 얻어내기 위한 일종의 위협전술이라고 미국이 판단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 외교부 담화에서 "우리가 핵시설들을 다시 동결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고 미국의 반응을 타진한 데 대한 답변의 의미가 있다.

결국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핵동결 해제 문제는 또 다른 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종혁 기자

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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