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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경복궁 그림 日서 발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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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5세기 전반기 경복궁을 그린 그림 한 점이 일본에서 발굴됐다. 이 그림은 경복궁 초기의 모습이 평면도가 아닌 컬러 입체로 담겨 있어 학계의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동(사진·목원대 건축학과) 교수는 12일, 최근 일본 오사카 와카야마 시립박물관에서 발견한 '조선국왕성지도(朝鮮國王城之圖)'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씨 조선의 수도, 한성에 있는 왕궁 경복궁을 부감한 비단 그림(錦繪)'이라고 기록돼 있는 이 채색화는 가로 70.2㎝, 세로 35.5㎝에 붉고 푸른 색채감이 두드러진 게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본화로 보고 있다.

1395년 태조 4년에 준공된 조선시대의 정궁 경복궁은 증·개축에 멸실이 극심했던 데다 전쟁·화재·정변 등을 겪으며 건축 기록이 거의 사라져 초기 모습을 알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없었다.

국내에서 경복궁에 대한 가장 오래된 도면으로 꼽히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경복궁도'는 헌종 연간(1834∼49)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출판박물관 소장의 채색 필사본 '경복궁 전도'나 장서각 소장의 '경복궁 지도'도 비슷한 시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림은 왕궁과 궁궐 안 정원을 세필로 묘사하고 있다. 오른쪽 밑 부분에 광화문이 보이고 뒷 배경에 북악산이 강조돼 나타났다.

건물들은 중국식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풍기는데 고려시대를 이은 조선초의 건물 형태일 가능성, 또는 일인 화가가 실경보다 상상력에 의지해 그렸을 것이란 해석 등 의견이 엇갈린다. 또 궐 안을 거니는 인물들의 관복과 관모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복식과 일부 맞지 않는 점이 있어 이 역시 일인 화가의 눈에 비친 이국 풍경으로서의 경복궁이란 가정을 내리게 한다.

그림을 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광화문은 분명해 보이나 근정전의 위치, 경회루와 연못의 배치 등 사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체적으로 일본인이 그린 경복궁이란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임진왜란(1592∼96) 때 파괴된 경복궁은 2백여 년 뒤인 1865년 대원군이 중건했으나 1876년 큰 불이 난 데다 1905년 이후에는 일제가 이를 다시 파괴해 근정전과 경회루 등 10여 동만 남는 수난을 당했다. 김교수가 소문을 좇아 몇 차례씩 일본을 드나들며 찾아낸 경복궁 그림이 소중한 것은 이렇게 격변을 겪은 경복궁의 최초 전경을 보여주는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김정동 교수는 "15만평의 땅에 근정전 등 정전들과 회랑·누각 등 3백90여 칸을 지어 국가의 위엄을 보이도록 한 경복궁의 첫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제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태의 일단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또 그림에 '기일(其壹)'이라고 쓴 것을 보아 다른 궁을 그린 연작 그림이 몇 장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조선 초기 경복궁 그림으로는 그 희소성으로 인해 가치가 높다고 여겨진다"며 "앞으로 이 그림에 대한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재숙·신준봉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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