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대한체육회 가입 신청…바둑=스포츠 논쟁 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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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6일 재단법인 한국기원이 대한체육회에 준가맹 가입신청서를 냈다. 2002년 체육회의 인정단체가 된 한국기원이 체육회 가맹을 위한 본격적인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바람에 "바둑이 스포츠냐"하는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1000만 바둑팬과 세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해온 한국기원이 왜 허리를 굽혀 체육회 가맹을 위해 애쓰는 것일까.

제도권에의 편입이 바둑지망생의 병역.진학 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진학 문제는 바둑계가 가장 신경쓰는 대목이다 (과거 이창호9단이나 유창혁9단이 충암학원에 다닐 때 법적인 문제 때문에 바둑 선수가 아닌 운동선수로 등록해야만 했다. 서울시는 중학교는 2004년부터 고등학교는 2006년부터 바둑 특기자를 체육특기자로 선발하기로 했다).

한국기원은 또 바둑이 체전이나 아시안게임 등의 정식종목이 되면 대중 보급에 유리하고 어린이 바둑교실이 체육시설이 되어 어린이 보급도 유리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바둑은 중국이나 동구권에선 이미 스포츠로 분류되어 있다.

또 도쿄(東京)에 본부를 둔 국제바둑연맹(IGF)은 지난해 국제경기연맹연합(GAISF)의 회원으로 가입했고 바둑.체스.브리지 등 두뇌스포츠 협회들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깃발 아래 2007년에 두뇌올림픽을 개최할 계획이다.두뇌스포츠란 개념은 이미 세계적 추세라고 한국기원은 말한다. 대한체육회는 그러나 바둑의 정체성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장기.체스 등 유사종목들의 신청이 쇄도할 것이란 걱정도 있다.

특히 체육학회 쪽은 바둑을 스포츠로 보는데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인체의 큰 근육을 사용하는 것이 스포츠의 대전제이며 두뇌 스포츠 개념은 언젠가 그리 갈지 모르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대한체육회는 2월 2일 이사회를 열어 바둑의 준가맹 여부를 심의한다.

*** 스포츠는 심.신이 함께 하는 것…"바둑은 가장 훌륭한 두뇌 게임"

스포츠는 축구나 육상처럼 신체동작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그렇다면 두뇌의 사고활동에 의해 경기를 하는 바둑이 어떻게 스포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스포츠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스포츠를 신체운동으로 보는 전통적 입장은 정신과 육체를 분리된 것으로 바라보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서양인들은 심신이 하나라는 통합적 사고로 기울고 있고 이런 사상적 조류에 따라 스포츠의 개념도 변하고 있다.

스포츠의 신체동작은 정신작용과 분리되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도의 정신기능과 결합된 활동이다. 사격이나 양궁에선 방향에 대한 판단과 함께 정신을 가다듬는 마인드 컨트롤이 수반된다. 축구선수는 머릿속으로 거리.방향을 계산한 뒤 볼을 찬다. 스포츠의 이런 정신 기능이 무시된다면 신체운동은 넋이 없는 로봇 동작과 별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IOC는 이미 두뇌게임의 일종인 브리지를 2002년 겨울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지정했고 체스와 바둑도 요건을 충족시키면 올림픽 종목에 넣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이나 동구는 바둑을 스포츠로 정한 지 오래됐다.

스포츠가 심신이 함께하는 운동경기라는 개념으로 범위를 확장한다면, 그리하여 정신성을 통합한 스포츠로 지평을 넓힌다면 바둑은 지구상의 모든 두뇌게임 중에서 가장 훌륭한 스포츠가 된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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