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공약허와실]盧는 재·삼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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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가 11일 기자회견을 했다. 李후보는 12일부터의 부재자 투표에 앞서 취약층인 20∼30대를, 盧후보는 수도권·영남권의 부동층을 각각 겨냥했다. 李후보는 대학 등록금 일시 동결과 이공계 학생 50% 이상 장학금 지원, 예비군 훈련시간 단축 등 젊은층을 고려한 파격적 공약을 제시했다. 盧후보는 부패 연루 인사의 공직 취임 금지, 철새의원 당적이동금지법 제정, 현 정권 비리 엄정처벌과 민주당의 재창당 등 '탈DJ'공약을 내놓았다. 자연히 "선심성 공약""재탕·삼탕 공약"이란 설전도 오갔다. 양측 공약의 내용과 현실성·문제점 등을 따져본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11일 제시한 공약은 '영남권 부동층용'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한마디로 "내가 집권하더라도 DJ와 관련된 비리를 덮지 않겠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정치개혁 8대 약속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盧후보의 공약은 미래의 부패방지 청사진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과거비리 청산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게 盧후보 참모들의 설명이다.

"현 정부의 비리와 실정도 엄정하게 처리하고, 특히 권력 주변의 새로운 비리가 나타날 경우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측근·가신정치의 청산이나 부패 연루·혐의자의 공직취임 및 공천금지 등의 제안도 다분히 현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여론비판을 의식한 내용들로 보인다.

특히 盧후보는 "공적자금 등 현 정부의 정책 중 논란이 돼 온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수사해 공과를 가리겠다"면서 이전까지와는 달리 구체적인 언급을 했다.

그간 盧후보측은 영남권 지지유보층 중 상당수가 "盧후보 집권시 현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청산이 미적지근할 것"이라는 이유로 지지를 망설이고 있다고 진단해 왔다. 부산·경남(PK) 35% 이상의 득표를 목표로 하고 있는 盧후보 진영으로선 이같은 벽을 돌파할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盧후보가 민주당 재창당을 강조한 것도 민주당에 대한 영남권의 부정적 정서를 감안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盧후보는 재창당을 위한 구체적 수순은 제시하지 않았다. 대선을 앞둔 당내 동요를 감안한 조치인 것 같다. 그러나 당내에선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원웅(金元雄)의원이 참여하고 있는 개혁적 국민정당과 합쳐 개혁색채를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외 몇몇 공약은 실현 가능성을 놓고 논쟁이 붙고 있다. 별도로 대통령 친인척 재산등록 부분이나 고위공직자 재산형성과정을 공개하겠다는 것도 기존의 공약내용을 되풀이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날 盧후보는 '철새정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감안한 듯 지역구 국회의원 탈당이나 전국구 의원 제명시 1년간 타정당 입당을 금지하는 방안을 입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치문화의 문제를 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원내 소수당인 민주당 입장에서 이를 관철할 수 있을지는 더욱 불투명하다.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盧후보야말로 1997년 (조순 총재의)민주당을 탈당하자마자 국민회의에 입당하지 않았느냐"며 "어불성설"이라고 받아쳤다. 南대변인은 장·차관 고위인사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이 정권 특유의 위원회 만능주의로, 기존 중앙인사위원회의 기능과도 중복된다"고 지적했고, 민주당 재창당 및 과거청산에 대해선 "동교동 등 DJ 친위세력에 업혀 있는 盧후보가 어떻게 민주당을 바꾸겠느냐"고 폄하했다.

강민석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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