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정명훈(57)씨는 피아니스트로 데뷔했지만 25년 전부터 독주는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의 서울시향 연습실 피아노 앞에 앉은 정씨가 농담처럼 대답했다. “피아노를 혼자 치면 조금만 잘못해도 100% 책임이잖아요. 그런데 다른 악기랑 같이 다섯이 실내악을 하면 책임이 20%로 줄어드니, 얼마나 좋아요.”
피아노의 양 옆에서 현악기를 들고 있던 네 명의 연주자가 와 하고 웃었다. 첼리스트 송영훈(36),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3),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번갈아 연주하는 이유라(25), 더블베이스 주자 성민제(20)가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를 연습하던 중이었다.
다음 달 4일 한 무대에 서는 성민제, 엘리자베스 조이 로, 김수연(왼쪽부터). [스테이지원 제공]
17일 리허설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쉬는 시간이면 서로 악기를 바꿔 연주하기도 해요. 민제가 첼로를 해도 돼요.”(이유라), “피아노는 유라가 잘 치잖아.”(정명훈)
이번 무대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22), 첼리스트 양성원(43)씨도 출연한다. 여러 종류의 악기를, 그것도 정상급 연주를 한곳에서 만끽하는 유쾌한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 여름 양대 ‘올스타전’= ‘7인의 음악인들’은 ‘7인의 남자들’이란 제목으로 1997년 시작했다. 2002년부터 7년 동안 중단됐다가 새로운 모습을 찾아왔다. 뿐만 아니다. 젊음을 앞세운 또 다른 합동 무대도 준비됐다. 엘리자베스 조이 로(29), 김수연·성민제가 ‘피아노·바이올린·더블베이스’의 독특한 악기 조합으로 모인 ‘랑데부’다. 김수연·성민제씨는 두 공연 모두 출연하게 됐다.
그래도 차별성은 뚜렷하다. ‘7인의 음악인들’이 베토벤 피아노 3중주 ‘대공’과 슈베르트의 ‘송어’ 등 전통적인 실내악 작품을 선보이는 반면, ‘랑데부’는 크라이슬러·피아졸라를 악기 편성에 맞게 편곡해 무대에 올린다. 20대의 젊은 연주자들이 보여줄 신선함이 이 무대의 포인트다.
정명훈씨는 “마치 먹고 사는 데에만 신경 쓰며 즐기지 못하던 한국인이 최근에 여유를 찾는 것처럼, 열심히 독주만 하던 한국 연주자들도 실내악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비유했다. 음악도 역시 사회를 따라가나 보다.
김호정 기자
▶7인의 음악인들=19일 오후 7시30분 창원, 20일 오후 8시 서울 노원 문화예술회관, 21일 오후 7시30분 인천, 2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02-518-7343.
▶랑데부=9월 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02-780-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