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ine HOtline] 진화하는 인터넷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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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스머프가 나타났다. 그것도 지하철에.

지난 7, 8, 15, 16일이다. 그들은 책을 읽고 있었다.

한때 TV만화 '개구쟁이 스머프'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들. 사람들의 궁금증은 커져갔다.

누굴까. 뭘 하려는 걸까. 곧바로 인터넷에 그들의 사진이 올랐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추측이 시작됐다.

"광고일 거다." 아니다. "지하철 화재 사고를 사죄하려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비서진이 아닐까."

추측이 억측을 낳을 무렵 한 방송국 카메라에 그들의 모습이 잡혔다.

10여일 만이다. 수소문 끝에 파주 출판단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스머프'들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저도 행복했습니다." 스머프 노릇을 했던 H사 이동준(34) 도서팀장의 말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저 봐라 스머프들도 책 읽잖니, 너도 좀 배워"라고 했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

조그만 눈구멍만 나있는 인형탈을 쓰고 다니는 건 녹록지 않았다. 첫째날 일행은 스머프 넷에 KBS의 개그콘서트에 나왔던 곰까지 다섯명.

한번은 열차에 곰을 두고 내렸다. 승객들이 다가왔다. "네 친구들은 다 내렸어." "휴대전화는 있니?" 미아가 된 곰은 한 시민이 건네준 200원으로 공중전화를 걸어 인솔자에게 연락했다. 이들은 역무원에게 끌려가 조사받는 모독(?)도 감내해야 했다.

H사가 인터넷 서점을 연 것은 지난해 12월. '책읽기 캠페인'을 하기로 하고 아이디어 회의를 열었다. 무료로 책을 나눠주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벤트가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곰돌이 푸도 후보였으나 '미련해 보인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책읽는 똘똘이 스머프 어때요?"

회의에 지쳐서였을까? 홍보대행사 천소연(29.여)대리의 농담 같은 제안에 다들 손뼉을 쳤다. "똘똘이 스머프가 독서 이미지에 맞는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스머프라면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이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한물간' 스머프 복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드는 데는 개당 100만원 이상, 빌리는 데는 하루 20만원대라고 했다. 수소문 끝에 인형극회와 개인 소장가에게서 '기본형 스머프'는 빌렸으나 똘똘이 스머프는 끝내 못구했다. 재미를 더하려고 개그콘서트에서 매 맞는 역할을 했던 곰 캐릭터도 추가했다.

"디카.폰카족에 의해 확산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관심이 클 줄은 몰랐어요." 신영인(37) 마케팅 팀장의 말이다. 인터넷에 오른 스머프 사진마다 수백건의 댓글이 붙었다.

"'선영아 사랑해'를 잊었나. 분명 광고다"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책읽기 캠페인이다"라는 진상에 근접한 추측도 많았다. 이 밖에 "국산 둘리를 쓰지"라거나, "네 사람이 앉을 자리를 스머프 셋이 차지했다"고 분개한 네티즌도 있었다. "파란색을 쓰는 것을 보니 파란 닷컴 광고다"라는 추측도 나왔다.

경찰은 "파장이 큰 사회현상"이라며 조사에 나섰고 곧장 '치안을 위협할 요인은 아니다'라며 애교로 넘기기로 했다.

호기심이 경찰 조사로 이어지자 스머프들은 자수(?)를 결심했다. 그러나 자수 직전, 한 방송국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모두 카메라 불빛에 현장 체포됐다.

사건 후 회사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회사 캐릭터로 스머프를 쓰자는 제안도 나왔다. 그러나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파파 스머프가 리더십 책을, 시인 스머프가 시집을, 편리 스머프가 인테리어 책을 소개하면 어떨까요? 하하."

이동준 팀장의 웃음소리가 경쾌하다.

파주=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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