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 종로로 가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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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일제시대 조선·일본 주먹 간의 대결을 그린 드라마 '야인시대'가 요즘 인기다. 배경 중 하나인 종로 화신백화점은 1937년 토착 자본으로 세워진 조선인의 자존심이었다. 지금은 고층 빌딩인 종로타워가 들어서 있다.

그런데 삼성증권이 오는 12일 본사를 이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국내 증권사들의 본점은 대부분 '한국의 월가'로 불리는 서울 여의도에 몰려 있다.

그동안 삼성증권이 여의도 입성을 피한 이유는 '풍수지리상 터가 안 좋기 때문'이라는 게 증권가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삼성증권의 한 관계자는 "여의도는 브로커(주식영업직)의 땅이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약정과 거래 수수료로 먹고 사는 국내 증시 풍토에선 미래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웃한 광화문에 16개 외국계 증권사가 몰려 있다는 사실도 은근히 종로행을 이끌었다. 이들과 어깨를 겨루며 투자은행(IB)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각오다.

삼성증권은 지난 주엔 영업 전략을 대폭 수정하겠다고 선언, 증권업계를 술렁거리게 했다. 현재 53%인 주식위탁 업무 비중을 2005년까지 30%로 줄이고 대신 종합자산관리 부문을 키우겠다는 것.

다른 증권사들은 영향력이 큰 삼성증권의 이런 행보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업계의 구조조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패할 확률도 높다. 아직은 소액 투자자들이 많고 그나마 단타매매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의 '홀로서기'가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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