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선 경락과 경혈이 오랜 세월 의학과 양생(養生)의 토대였다. 2000년 전 중국 최고 의학서 『황제내경(黃帝內經)』도 경락의 전모를 소상히 담고 있다. 경락은 온몸의 기혈(氣血)을 운행하는 통로요, 경혈은 경락상의 주요 지점으로 침구(鍼灸)를 시술하는 자리다. 문제는 이 경락이 드라마 ‘신의’에서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해부학에 바탕한 서양의학이 경락·경혈의 존재와 침구의 효과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그래서다.
경락 이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연구가 없는 건 아니다. 1960년대 북한 의학자 김봉한이 선두 연구자로 꼽힌다. 그는 토끼의 경혈에 방사성 동위원소 P32를 주입해 움직임을 추적한 결과 이동 통로가 경락과 일치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 후 의미 있는 진전이 뒤따랐다. 서울대 소광섭 교수의 97년 쥐 실험이 대표적이다. 위와 췌장을 관장하는 경혈로 알려진 ‘중완혈(배꼽과 명치 가운데)’ 자리에 염료를 주입했더니 췌장 쪽으로 집중적으로 흘러갔다. 경락의 존재를 의미하는 결과라는 거다.
요즘 한의사들의 한숨이 깊다고 한다. 보약은 안 팔리고 한의사 수는 지난 10년 새 81%나 급증해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그렇다고 수천 년 계승돼 온 전통의학이 명맥을 잇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한의학이 살려면 한의사 수급 조절이나 정부 지원도 긴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의학의 이론적 토대를 강화해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한방 치료의 기본이 되는 경락의 존재와 효과를 입증해 온 것처럼 말이다. 예방·웰빙의학으로서의 기능을 살려 다이어트·피부·한방성형 같은 특화 분야를 개척하는 것도 방법일 터다. 편작이나 화타 같은 신의(神醫)가 지금이라고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