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징용 보상은 후손의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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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일 청구권 자금이 확정된 뒤 곧 민간인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나…당시 국민소득을 향상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에 보상을 미뤘다."

옛 경제기획원이 1976년 펴낸 '(대일)청구권자금백서' 56쪽에 실린 글귀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 5억달러를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대부분 경제 개발 용도로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정부의 심정을 밝힌 것이다.

실제 이 돈으로 세계 최대의 제철소인 포스코(옛 포항제철)를 만들었다. 경부고속도로.소양강댐.철도시설 등을 건설해 경제 발전의 기틀을 쌓았다.

<1월 19일자 4면>

백서에서 밝혔듯 1966년부터 75년까지 10년간 청구권 자금이 매년 1% 넘게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다.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목숨을 잃거나 숱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징용 한인들의 억울한 희생의 대가가 결국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쓰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젠 후손들이 나서야 할 차례라는 목소리가 높다.

백서에 따르면 당시 제정된 '대일 민간 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받은 징용 사망자는 9546명(보상액 총 28억6100만원, 76년 4월 30일 현재)에 불과하다. 그나마 보상 대상도 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망한 사람으로 제한했다.

학계에서는 일제 식민 지배 때 징용.징병으로 끌려간 피해자만 70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 일본군 성피해 여성도 최대 20만명으로 추산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자면 최소 수십조원이 필요할 것"이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네티즌들은 "포스코가 돈을 대야 한다" "전 국민이 십시일반하자" "나랏돈을 들여야 한다"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제시대 피해자들의 한을 돈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한을 풀어주고 희생을 기리는 보상방안조차 만들지 못한다면 훗날 역사에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모두 후손들의 몫이다.

김종윤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