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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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본인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의 결과를 충분히 숙지했으며, 본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이를 이행할 것을 약속합니다. "

5년 전 대통령후보들이 썼던 각서다. 한 후보는 대통령에게 합의 이행을 다짐하는 서한을 보냈다. 선거를 꼭 2주 앞둔 후보들은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각서를, 서한을 써야 했다.

그날은 추웠다. 서울 기온은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다. 시민들의 마음은 더욱 추웠다. 부엌에 연탄 한장 없이 엄동설한을 맞는 느낌들이었다. 그들은 나라가 끝모를 위기 속으로 휘말려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면 IMF 사람들은 느긋했다. 한국 정부의 IMF 구제금융 요청 방침 발표 이후 서울에 온 휴버트 나이스 단장은 열흘 남짓 협상 기간 중 종금사 영업정지, 외국인 주식 취득한도 확대 등 요구 사항들을 하나 하나 꺼내놓았다. 미셸 캉드쉬 총재는 협상 마지막 날인 이날 오전에 방한(訪韓)했다. 그는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참고 잘 해나가면 몇년 후 한국 경제는 튼튼한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며 스승이 제자 타이르듯 말했다. 이날 그가 합의문 서명을 거부하며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 바로 3당 대통령후보의 각서였다.

당초 우리 정부는 IMF의 각서 요구를 묵살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소련이 몰락하고 러시아로 바뀌었어도 대외부채·협정은 고스란히 승계됐다"며 "IMF의 요구는 국가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달러가 바닥나 부도 직전이었던 판에 캉드쉬의 요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세 후보들이 '캉드쉬 총재 귀하' 대신 우리 대통령 앞으로 각서를 쓴 것이 그나마 IMF의 '배려'였다.

그날 캉드쉬는 이 나라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후보들까지 한바탕 주무른 뒤에 저녁 늦게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 소식을 전한 본지의 1면 제목은 '앞으로 3년 경제주권(主權)상실'이었다. 세월은 흘러 대선 열기가 다시 나라를 덮고 있다. 한번 각서를 썼던 후보와, 대통령이 된 후보가 만든 정당 출신 후보가 맞서고 있다. 그들은 그날을 기억할까. 5년 전 오늘, 그날은 1997년 12월 3일이었다.

손병수 Forbes Korea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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