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성의 보여라" 계속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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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대표는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패자가 승자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다"고 합의했다. 鄭대표는 그러나 선거등록 마감일인 28일에도 공조에 나서지 않았다.이날 예정된 양자회동도 불발시켰다.

"깨끗한 승복으로 이미지가 좋은데 불평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당내 우려에도 불구하고 鄭대표가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그의 대선 이후 구상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패배 직후 떠난 강원도 여행을 마치고 당사에 첫 출근한 鄭대표는 당무회의에서 "자만했고 여러 가지를 확인하지 못해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회한을 토로했다. 그는 여론조사 결과에 반발해 농성 중이던 자원봉사자들에게도 "결국 후보인 내가 자만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鄭대표는 당 조직을 정비하고 민주당과의 협상단을 보강하는 일에 관심을 쏟았다. 당무위원 전원은 패배에 책임을 지고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민주당과의 협상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鄭대표에게 일임했다.

鄭대표는 "통합21은 모범적인 개혁정당으로 성장할 것이며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계속 힘을 모아 달라"고 화답했다.

鄭대표는 자신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요구에 대한 盧후보 측의 어정쩡한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당이 벌써 자만해 그러는데 그렇게 되면 불행한 결과가 되는 것을 알텐데"라고 했다. 특히 盧후보에 대해 "좀더 성실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런 발언으로 단일화 공조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민주당 측에서 이날 저녁 통합21 측과 협상과정에서 분권형 개헌의 시기를 鄭대표의 요구대로 2004년에 발의하겠다는 입장이 전달되자 그의 태도도 다소 바뀌었다.

전성철(全聖喆)정책위의장은 개헌안 수용이 "공조의 필수이자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태도가 권력 나눠먹기로 비춰지는 것은 피하려 했다. 鄭대표는 "권력 나눠먹기를 하려면 집권 후 바로 하지 2004년까지 기다리겠느냐"고 순수성을 주장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줄이자는 데 국민 다수가 공감하고 있으므로 통합21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강력히 내세울 경우 국민들은 개헌이 가능토록 일정 의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21을 대선 후까지 유지하면서 17대 총선에서 원내정당을 달성하고 차기 대선을 노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全의장은 "盧후보가 차기 정부에서 鄭대표의 역할을 제시하지 않고 정몽준 지지표를 흡수할 수 있겠느냐"며 "공동정권 문제는 민주당에서 자연스럽게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표면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단일후보 승리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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