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금도’는 지킬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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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최근 어느 정당의 대변인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논평에 집권당으로서 금도를 지키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말처럼 정치권에서 ‘금도’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금도를 지켜라” “금도를 벗어났다” 등이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금도’를 어떤 한계나 금지선 등의 의미로 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뜻으로 ‘금도’란 단어는 없다. 사전을 찾아보면 ‘금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금도(禁盜)’와 ‘금도(襟度)’다. 앞의 ‘금도(禁盜)’는 도둑질하는 것을 금한다는 뜻이다. 국회의원이 도둑이 아닌 이상 이 단어는 따져볼 필요가 없다.

나머지 단어인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을 뜻한다. 여기에서 ‘금(襟)’은 옷깃·가슴·마음 등을 의미한다. “병사들은 장수의 금도에 감격했다” 등처럼 쓰인다. 이 ‘금도’ 역시 정치권에서 말하는 ‘금도’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인들은 아마도 ‘금지할 금(禁)’자와 ‘법도 도(度)’로 이루어진 ‘금도(禁度)’를 연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단어라면 넘어서는 안 되는 선 등의 의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전에 없는 말이다. 따라서 “금도를 지켜라” “금도를 벗어났다”는 “정도를 지켜라” “도를 벗어났다” 등 다른 말로 적절히 바꿔야 한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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