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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직업병 고발한 박천응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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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박천응 목사가 지난 17일 인천공항에서 태국 여성 노동자 시리난씨가 탄 휠체어를 끌고있다. [연합]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있는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의 소장인 박천응(44)목사.

박 목사는 경기도 화성의 D업체에서 노말헥산을 취급하던 태국인 여성노동자 8명이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란 직업병에 걸린 사실을 밝혀내고, 이 중 태국으로 돌아간 세 명을 현지에까지 가서 데려와 치료받게 주선했다.

지난 17일 태국인 여성노동자의 휠체어를 밀며 인천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온 그는 "병든 이들을 이렇듯 매몰차게 내몬 것은 일종의 범죄며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임금.중노동.열악한 작업환경에 시달리다 '비정한 코리안 드림' 앞에 끝내 몸도 마음도 망가져 버린 이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 목사는 앞서 15일 직업병에 걸려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된 태국 노동자 세명이 자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조건 데려와 치료받게해야 한다"며 자비를 털어 태국으로 향했다. 그는 방콕에서 7~9시간 떨어진 곳에 살고있는 세명의 노동자를 일일이 찾아내 한국으로 데려왔다. 박 목사는 17일 밤 이들을 산재의료원인 안산중앙병원에 입원시킨 뒤 자정이 넘어서야 병원문을 나섰다.

이런 박 목사를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변자'라고 부르며 따른다. 1994년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를 연 뒤 10년 이상 그들의 권익을 대변해 왔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박 목사는 1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한국 사정에 밝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산재.고용 문제 등을 무료 상담하고 있다. 센터 2층에는 오갈 데 없는 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마련해 지금도 평균 20~30여명이 머물고 있다.

박 목사는 "모든 인간은 노동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에서 차별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의 낡은 책상서랍에는 그의 도움을 받았던 20여개국 외국인 노동자가 보낸 감사편지가 가득하다.

안산=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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