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시장 때이른 겨울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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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서울 빌딩시장이 이른 겨울잠에 빠졌다. 사자 세력이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거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파트에 이어 빌딩시장도 동반 침체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 매매값이나 임대료는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연말 대선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하락세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거래 '뚝'=최근 중소형 빌딩을 전문으로 중개하는 사람들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한때 짭짤한 재미를 봤던 10억∼20억원 안팎의 중소형 빌딩이 잘 안 팔리기 때문이다. 은행 프라이빗 뱅킹(PB)고객 역시 이 금액대의 소형 빌딩을 포트폴리오 투자대상으로 검토하면서도 선뜻 계약하지 않고 있다.

포시즌컨설팅 정성진 사장은 "10억원대 빌딩은 올 여름까지도 임대수입을 노린 투자자들이 경쟁적으로 사들여 매물이 귀했는데 지난달 말부터 매기가 끊기고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여파로 중소형 빌딩을 중개하는 일부 업체는 아예 일손을 놓고 있다. 강남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매출액이 10월 이후 30% 이상 곤두박질쳤다"고 하소연했다. 덩치 큰 대형 매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업계는 거래부진의 원인으로 대선과 경기불안을 꼽는다. BS컨설팅 김상훈 사장은 "국내외 경기가 불안한 데다 대선 이후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매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생각에 매수 시기를 미루는 투자자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옥 장만을 고려하던 기업체 중 대부분이 당분간 셋방살이를 계속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신영에셋 김상태 상무는 "거시경제 불안 요인 때문에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낀 기업들이 투자를 보류하고 있는 것"이라며 "아직은 매수·매도자나 임대·임차인의 관계가 서로 눈치만 보는 단계여서 값이 내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거래 부진 계속될까=현재의 거래중단은 일시적인 것이며 내년에 다시 매매시장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공실률이 소폭으로 늘거나 주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임대료가 여전히 강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투코리아 변재현 연구위원은 "지난 여름 잠시 주춤했던 신설법인수가 10월 이후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고, 연 10% 이상의 임대수입이 가능하다는 매력 때문에 리츠·기업체·투자회사 등 잠재수요자는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계 회사가 여태까지 자사 빌딩의 가격을 떠보는 수준에 그쳤다면 내년부터는 협상 테이블에 나올 예정이어서 굵직한 빌딩의 매매가 활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대선 이후 경기가 나빠질 경우 거래 부진이 계속될 것이라는 비관적 시각도 있다. 샘스 관계자는 "지난 3분기 공실률이 2분기보다 약간 늘었고, 앞으로 서초교보빌딩·포스틸·캠브리지재단 빌딩 등 강남권 새 건물의 임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추가 공실이 발생해 임대료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이 경우 투자수익률이 떨어지고 경기위축에 따른 매수세력이 줄어들면서 거래시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seom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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