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 예능 보유자 이애주 교수] "우리 춤은 恨과 흥의 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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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하늘에서 하얀 빛 한줄기 내려와 바짝 엎드려 있다. 땅을 애무하듯, 어깨 들썩이며 흑흑 흐느껴 같이 호흡하듯 오래도록. 서서히 일어서는 빛줄기는 붉은 띠를 엇비껴 맨 흰 장삼에 하얀 고깔의 사람이다.

하늘에 절하듯 긴 소맷자락 두팔 공손히 올리고 오른발 찍고 오랫동안 들어 땅에 절 드리며 인간으로 첫 걸음을 내딛는다.

이내 사방으로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며 긴 장삼 맺었다 풀며, 너울너울 춤을 춘다. 춤과 함께 사랑하며, 이래저래 살아가며 우리 가슴에 맺힌 한 또한 정갈하게 씻겨진다.

중요 무형문화재인 승무 예능보유자 이애주(55·서울대 교수)씨가 지난 20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이애주의 춤'공연을 가졌다.

씻김굿춤·진도북춤·칼춤·승무 순으로 이씨와 제자들이 두시간여 펼친 이날 공연은 한국춤의 모든 것을 자신에게 전수한 벽사 한영숙을 추도하기 위한 춤판이었다.

1987년 6월 26일 민주화 대행진 출정에 앞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춘 '바람맞이 춤'으로 민주화바람을 거세게 일으켰던 이씨의 이번 춤판은 또 역사 속에서 의롭게 죽어간 수많은 영령들을 진혼하고 통일을 맞기 위한 굿판이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스런 몸짓이 춤입니다. 그러나 예(禮)의 몸짓이 없으면 춤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마주할 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 예입니다. 예는 공경이고 믿음이고 섬김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관계가 예의 몸짓인 것입니다. 우리 춤은 어느 춤이든 그런 예의를 직접 드러내는 절로 시작하고 끝을 맺습니다."

이씨의 춤 정신과 춤 사위는 '예'다. 이날 공연에서도 춤마다, 단락마다 절로 시작하고 절로 끝났다.

한국 춤의 기본 사위는 맺히면 젖히고 감기면 푸는 것이다. 화르르 흩어지고 무너지는듯 하다 우뚝 중심을 잡고 다시 그 중심에서 모든 것을 풀어내는 과정이 한국춤이다. 때문에 한국춤에는 1만년을 살아온 민족의 혼과 역사가 그대로 담겨있다. 따라서 이씨는 한국춤은 '몸으로 하는 인문사회과학'이라한다. 춤을 추다보면 우리 선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모든 관계를 맺고 풀었는가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춤은 사람의 염원을 빚는 몸짓의 총화입니다. 일그러진 꿈을 몸으로 빚어 실현하며 상한 마음을 달래줍니다. 때문에 우리 춤은 의상이나 얼굴·동작에 치중해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 춤사위에서 나오는 기운을 느끼며 내가 사는 오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바라본다면 여러분 마음 속에 1만년 묵혔던 한과 흥이 너울너울 울렁거릴 것입니다."

전통에 충실하며 춤을 추더라도 예의를 갖추고 빈 마음으로 추다보면 출 때마다 달라지고 그때마다 우리 역사와 그 뿌리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되더란 것이 이씨의 체험담이다. 삼국시대 이전의 우리의 제천의식, 그리고 1만년 전 우리 민족이 하늘의 신을 불러내려 땅의 신과 교합시키며 하늘·땅·사람이 하나로 통해 삼라만상이 생산적이고 평화롭던 우주적 몸짓이 오늘 추고 있는 승무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년을 살아 있는 춤사위가 있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인데 창작춤이라며 불변의 객관적 몸짓인 우리 춤의 근본 사위마저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해서 그런 춤은 한 번 발표되고 나면 그대로 사장되고 말지 않습니까. 창작을 하려면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야돼요. 거기서 우리의 우주관·세계관을 체득해낸다면 무궁무진하게 재창작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표현이나 흉내가 아니라 자신을 진실되게, 믿음직스럽게 드러내 관객은 물론 귀신까지도 감동시키는 것이 우리 춤입니다."

우리의 뼈와 살, 무엇보다 혼에서 배어나온 게 우리 춤이다. 그러나 우리는 블루스·고고·디스코·테크노·라틴·스포츠 댄스 등 1년이 멀다하고 새로 나오는 서양 유행춤을 신바람 나 따라 추고 있다.

서양인들 몸에서 나와 우리 몸에는 무리가 가는데도 말이다. 춤뿐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 분야에서 요즘 더 신나게 외국 것을 따라하는 풍토를 이씨는 '현대판 자발적 식민문화'로 본다. 이럴 때일수록 바르게 우리의 근원을 되찾아가는 의식은 더욱 중요하다고 이씨는 강조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국춤의 대가 김보남에게 배웠던 이씨는 초·중·고 시절 전통춤 대회를 휩쓸었다. 덕분에 박정희 정권 아래서 외국의 귀한 손님이 오면 김포공항으로 차출돼 화동 노릇도 톡톡히 해야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재학 시절, 승무로 신인 예술상을 수상하며 승무 인간 문화재였던 한영숙씨 눈에 들어 수제자가 됐다.

70년대 초부터 이씨는 탈춤·민요·전통춤 등의 사회참여 방안을 이끌어냈다. 그러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 절정에서 시국춤을 춘 시대의 춤꾼으로 이씨는 우리는 물론 세계인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것이다. 88년 범민족대회를 마지막으로 이씨는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판에서는 춤 안춘다"며 시국춤을 접었다.

"범민족대회를 마치고 30명의 위원들이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였어요. 대회에 문제점이 있으면 그 주체 각자가 반성하고 깨치며 바르게 나가야하는데 반성도 없이 계속 관행적으로 되풀이하려는 것이었어요. 진짜도 못보고 바르게 나가지도 못하는 꼴에 이것은 아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내 자신부터 둘러보기 위해 빠져나왔지요. 이런 저의 각오는 지금의 운동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어서 안타깝습니다."

그후 이씨는 우리의 사상·고전문학·그림·벽화 등은 물론 사회과학·미학 서적을 탐독하며 우리 춤의 이론계발과 춤 재창작에 열중하다 96년 승무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bacch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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