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 번호 공동사용제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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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통해 통신산업 발전과 소비자 후생 향상을 꾀할 수 있는 방안이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다. 또 번호 이동성 제도의 도입이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업자 식별번호 체계의 개선 방안도 주요 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방안은 통신산업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고착효과에 따른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 제한성과 번호자원의 수급 불균형 현상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고착효과란 한 통신서비스에 가입하면 다른 사업자로 쉽게 변경하기 어려운 현상을 뜻한다. 이는 번호의 변경·단말기 교체·멤버십·장기 가입 할인 등으로 인해 전환비용이 크기 때문에 나타난다.

현재 국내에는 사업자 간 번호 이동성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다. 가입자가 사업자를 교체하려면 번호를 변경해야 하며 여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입자가 한번 사업자를 결정하면 가격과 서비스의 차이가 있더라도 기존 사업자에게 계속 서비스를 받게 되는 고착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최근 번호 이동성 제도의 도입에 대한 일정을 발표한 바 있다. 그 구체적 시행 방안과 관련된 비용 및 기술방식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번호 이동성 제도는 기존 이동전화 가입자들이 사업자를 바꾸려 할 때 불편함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신규 가입자들은 가입하고자 하는 사업자와는 무관하게 원하는 번호를 선택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신규 가입시장에서의 번호 고착효과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사업자 간 식별번호를 폐지하는 소위 번호 공동 사용(number pool)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번호 공동 사용제도는 신규 가입자가 자신이 선택한 사업자와는 무관하게 원하는 식별번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번호 고착현상은 쉽게 해결된다. 또 가입자가 자신이 원하는 식별번호와 요금체계를 한꺼번에 선택할 수 있게 돼 소비자 후생이 증진된다. 뿐만 아니라 현재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번호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업자들에게 부여된 식별번호는 사업자당 1천7백만명에서 2천4백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자마다 가입자 규모가 달라 일부 사업자는 번호자원의 부족으로 추가 배정을 요구하는 반면 다른 사업자는 번호가 남아돌아가는 번호자원의 수급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업자별로 식별번호를 주고 번호자원을 관리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통신산업 규제 체계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영국도 이동전화 사업자에게 별도의 식별번호를 부여하지 않고 10만 단위로 번호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은 이동전화와 유선전화가 동일한 번호체계를 사용해 번호만으로는 이동사업자에 대한 식별이 불가능함은 물론 이동전화와 유선전화의 구분도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시외전화 사전 선택제를 폐지해 경쟁의 활성화를 유도함과 동시에 소비자들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번호 공동 사용제도는 소비자들의 번호선택 범위를 확대해 소비자들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한정된 자원인 번호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또 기존 시장뿐 아니라 신규 시장에서도 고착효과를 없애고 사업자 간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차제에 번호 공동 사용제도를 도입해 현재 사업자 식별번호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업자 간 갈등을 해소하고 소비자 선택 폭 확산 및 희소한 번호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동시에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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