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무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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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요즘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하는 펀드매니저들은 사무실에서 도시락이나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는 날이 많다. 지난달 이후 점심시간대(낮 12시∼오후 1시)에 주가가 요동치는 날이 부쩍 늘어나면서 나타난 신풍속도다.

이는 낮 12시 30분 발표되는 반도체 현물 가격 때문. 반도체 매매 중개업체인 D램익스체인지(www.dramexchange.com)는 이 시간에 현물 가격을 발표한다.

반도체 가격에 큰 변화가 없으면 주가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가격 변동이 있는 날에는 요동을 친다. 특히 거래소 시장에서 20%의 비중(시가총액 대비)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움직이는 날엔 종합주가지수도 크게 출렁거리게 마련이다. 실제 반도체 가격(2백56메가 DDR반도체 기준)이 6.1% 떨어진 지난 13일에는 점심 시간에 종합지수가 8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이에 앞서 반도체 가격이 한창 잘 오르다가 잠깐 쉬었던 지난달 30일에는 종합주가지수가 12시부터 1시 사이에 11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반대로 반도체 가격이 오른 지난달 23일에는 점심시간대에 주가가 반등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점심시간대에 선물·옵션의 매매 방향을 확 바꾸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주가 등락을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점심시간에 주가 등락폭이 커지자 투신사·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점심시간에도 사무실을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18일 점심을 사무실에서 해결했다. 직접 펀드를 운용하는 장사장은 책상 위에 켜 놓은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을 곁눈질하면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펀드매니저 12명 중 외부에서 점심을 먹은 매니저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사무실에서 라면과 떡국·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이같은 사정은 마이다스에셋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펀드매니저 대부분은 햄버거나 도시락을 배달해 먹거나 구내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는 곧장 컴퓨터 앞에 앉는다. 마이다스에셋 조재민 사장은 "잔뜩 긴장한 채로 점심을 먹는 바람에 소화도 잘 안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미래에셋투신운용·자산운용은 18일부터 점심시간을 펀드매니저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오전 11시쯤 교대로 잠깐 나가 점심을 먹는 매니저가 많은 편이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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