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한·일회담] 일본 언론 "개인보상, 한국 정부 책임 확실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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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와 사법부는 일제 식민지배에 따른 청구권 문제는 이미 해결이 끝났다는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그 근거로 한.일 기본조약의 부속문서인 '청구권 및 경제협력 협정'에 "청구권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명기돼 있다는 사실을 내세워왔다.

◆한·일 수교회담 일지 그래픽 크게보기

◆ "개인 보상 책임은 한국 정부에"=일본 언론들은 17일 외교 문서 공개로 인해 이 같은 기존 입장이 재확인됐음은 물론 한국인 군인.군속.징용자 등 개인 피해자에 대한 보상 의무는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에 있음이 확실해졌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공개 문서 가운데 한국 외무부 장관이 1964년 5월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보낸 문서에서 "(한국) 정부는 개인 청구권 보유자에 보상의무를 갖게 된다"고 밝힌 점을 인용하면서 "피해를 본 개인의 청구권도 해결이 끝났다는 사실이 뒷받침됐다"고 보도했다.

지지(時事) 통신은 "한국 정부가 대일 청구권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경제협력 자금의 대부분을 경제 재건에 사용하고 개인 보상은 거의 실행하지 않아 향후 한국 정부에 대한 보상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교도(共同) 통신은 "한국인 피해자가 일본 정부에 개인 보상을 직접 요구할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됐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과거사 문제를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문서 공개가 현재의 양국 우호관계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고 보도했다.

◆ 북.일 수교 협상의 모델=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일본 정부로서도 내용과 경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무성 관계자들은 "서로 득이 될 게 없는 내용이 공개됐다"면서 비판적이었다.

일본 정부가 문서 공개를 우려하는 것은 북한과의 수교 교섭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일본은 대북 수교 과정에서 최대 걸림돌인 과거사 청산 문제는 한국과의 해결 방식을 모델로 한다는 전략으로 임해왔다. 실제로 2002년 9월의 평양 북.일 공동선언에서 양측은 수교 후 일본이 경제협력을 제공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청구권'이 아닌 '경협자금'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남은 문제는 경협 자금의 규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에 제공한 5억달러는 40년 동안의 화폐가치 변동을 감안하면 50억~100억달러에 해당한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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