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시나리오다" 한나라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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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이 민주당 노무현·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간의 단일화 합의로 비상이 걸렸다. 후보단일화를 통해 이른바 '반창(反昌)연대'까지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그려본 '최악의 시나리오'가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크고 작은 비상대책회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집됐다. 당사엔 위기감까지 감돌고 있다.

당직자들의 몸놀림과 눈빛도 달라졌다. 17일 서청원(徐淸源)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徐대표는 두 후보간 '권력 나눠먹기'밀약설을 주장했다. 동시에 ▶청와대 배후설▶TV토론·여론조사의 위법성 등을 제기하며 단일화를 공격했다.

이규택(李揆澤)총무도 밀약설을 거들었다. 그는 盧후보를 겨냥, "단일화협상 전 DJP식 권력 나눠먹기는 절대 않겠다더니 며칠 만에 헌신짝처럼 약속을 저버렸다"고 공격했다. 그는 이면합의설에 대해 "두 후보의 최측근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라고 신빙성을 강조했다.

김영일(金榮馹)총장 등 다른 고위 당직자들도 각종 회의 석상에서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돼 있다""이미 후보가 결정돼 있다"는 등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거당적인 대국민 홍보전도 적극 검토 중이다. 우선 특별당보와 홍보물을 제작, 배포하고 의정보고회 등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은 또 두 후보간 단일화를 '부패정권 연장을 위한 야합'으로 규정, 공격할 채비를 갖췄다. 누가 되든 'DJ 양자론'을 내세워 '부패정권 연장이냐, 정권교체냐'는 논리를 편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네거티브 전략과는 거리를 두던 이회창(李會昌)후보도 직접 나섰다. 그는 "盧·鄭 단일화는 제2의 DJP 야합"이라고 비난했다. 이날 부산MBC와의 토론에서다. 그는 "두 후보는 이념과 성향이 완전히 다른 인물로 한 후보는 파업을 선동했고 다른 후보는 구사대를 투입, 난리를 쳤던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념과 배경, 정치철학이 다른 후보들"이라면서 "그런데 한쪽을 밀던 분들이 다른 쪽이 선택됐다고 표를 던지겠느냐"고 말했다. 李후보로서는 이례적이고 강도 높은 비판이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도 한나라당의 '청와대 배후설'에 반격을 하고 나섰다. 박선숙(朴仙淑)대변인은 "한나라당이 대통령과 청와대를 음해하더니 이제는 선거홍보물에까지 잘못된 내용을 싣고 있다"며 "공식 선거전략인지, 李후보 지시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단일화는 부패정권 연장 음모"라는 徐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IMF위기를 불러오고 한보·수서사건 등 수많은 부패사건의 당사자들이 모인 한나라당의 대표는 부패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다.

남정호 기자

namjh@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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