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카오스이론 뿌리부터 이해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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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자체조직화, 적응, 발현 기능을 요소로 하는 복잡계는 21세기 과학계의 화두지만 일반인들에겐 알쏭달쏭합니다. 그렇다고 영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경제·경영·사회·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이 용어가 튀어 나옵니다. 이 책은 복잡계 또는 복잡성의 과학이 알고 싶을 때 학생시절 물리시험에 0점 맞은 사람-제 얘기입니다-도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복잡계 연구의 모태가 된 미국 산타페연구소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시작했는지부터 복잡계 연구의 과제까지 인물중심으로, 그리고 소설식으로 풀어갑니다.

뉴턴 이래 과학자들은 구성요소의 성질을 알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자연을 쪼개고 쪼개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분자생물학이니 천체물리학이니 해서 학문은 세분화하고, DNA며 쿼크가 발견됩니다. 그러나 환원주의라고 하는 이 방법론은 세상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치 시계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열심히 분해해 놓고는 다시 결합하지 못해 쩔쩔매는 어린이와 비슷합니다.

과연 우연한 돌연변이만으로 오늘날 복잡한 두뇌를 가진 인간으로까지 진화했는지, 옛소련이 갑작스레 붕괴한 이유는 무엇인지, 왜 주가는 춤을 추는지 등 기존의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학제간 연구로 풀어보자는 것이 복잡계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물리학자·경제학자 등이 일정한 패턴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책 내용보다 이번에 정작 소개하고 싶은 것은 출판사입니다. 범양사출판부는 몇 안되는 '꼭 필요한 출판사' 중의 하나입니다. '신과학총서'를 내면서 일찍이 척박한 과학출판 풍토를 개척해 왔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복잡성의 과학에 관한 이 책은 1995년에 나왔습니다. 읽어 보면 당시엔 전문용어도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태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되먹임(피드백), 컴퓨터 시늉내기(컴퓨터 시뮬레이션), 쪼가리이론(프랙탈이론) 등이 나오거든요.

여기에 단편적이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붉은 여왕 가설'같은 요즘 한창 주목받는 이론들이 언급됩니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붉은 여왕』(김영사 펴냄)-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참신하다고 봅니다-이 언급된 것을 뒤늦게 알고 "진작 눈여겨 볼 걸"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또 과학총서라지만 반드시 과학에 한정되지 않은 미덕도 있습니다. 국내에 고정독자를 가진 대니얼 부어스틴의 탁월한 과학사 저술 『발견자들』을 처음 소개한 것도 이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출판사가 최근 활동이 주춤한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명저를 몰라주는 독자 탓인지 출판사 내부사정 때문인지….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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