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배후에 뭐가 있지?"갖가지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모두들 배후를 더듬는다. 국내 문제건 국제 문제건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를 둘러싼 음모설은 지금도 여전하다.

'미국의 자작극'에서부터 '부시 대통령의 인기작전''미국 군수업체의 압력'또는'이슬람권을 초토화해 중동에서의 석유자원 독점을 위한 기획전쟁설'에 이르기까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국내에서는 인기가요 순위나 출판분야 베스트 셀러 발표에도 반드시 돈이나 섹스에 연결된 의혹이 나돈다. 대선을 앞둔 정치판에서의 음모 이론은 상상을 절할 만큼 엄청나게 많다.

"그럴리가-"하는 반 의문에서부터 "그럴수가-"하는 강한 의문으로, 또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긍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반응을 일으키는 음모론이 횡행한다.

TV 드라마 X파일이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믿어지지 않는 의외의 일들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발견된 메모, 이웃사람들의 지나간 말 한마디, 옛 친구의 사진첩에서 발견된 어린 시절의 사진 등이 건너편에 있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다.

정치적 음모설로 곧잘 등장하는 국제사건으로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이 손꼽힌다. 관련된 의혹도 수십가지다. 그 중의 하나, 대통령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의 지지자들은 텍사스 출신인 존슨 부통령의 음모꾼들이 케네디를 저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존슨 부통령은 로버트 때문에 케네디의 쿠바 정책에 무리수가 나타났으며 결국 피델 카스트로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했다고 반격했다. 그러나 양쪽이 제기한 음모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 라이벌간의 정계 주도권 싸움으로 갖가지 음흉한 이야기들이 나돌아 당시 미국 정가는 한시도 조용하질 못했다.

음모론은 언제나 달콤하다. 누구나 그 내용에 솔깃해진다. 현실을 주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대항세력이 새 의혹을 퍼뜨려 견제한다. 실체를 모르니 부풀려 전달된다. 처벌받는 사람도 없다. 이 허점을 뚫고 새 의혹이 확대 재생산된다. 정국이 혼란할수록 더욱 가속된다. 사이버 공간은 음모론의 바이러스가 성장하는 데 완벽한 문화적 토양으로 제공되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요즘 대선 후보와 관련된 음모론은 정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국민이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본 탓이다. 유권자의 지적 수준을 너무 앝잡아 본 데 대한 얄미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