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경기 내년말부터 서서히 살아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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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 샌디에이고 외곽 라호야 지역에 자리잡은 퀄컴 본사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이동통신 원천기술 보유업체라는 명성에 비해서는 자그마했다. 7층에 위치한 어윈 제이컵스(68) 회장의 집무실도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이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인터뷰 룸에 들어선 제이컵스 회장은 한쪽에 마련된 음료수와 다과를 기자에게 권하면서 "샌디에이고 날씨가 참 좋지 않으냐"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퀄컴은 제이컵스 회장이 지난 85년 동료 6명과 함께 설립한 회사다.

현재 우리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북한 지역에서의 CDMA 방식 무선이동통신 네트워크 구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교수 출신인 제이컵스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 내내 선생님 질문에 정성스레 답하는 학생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는 MIT에서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MIT와 UC샌디에이고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으며, 저서인 『통신공학원리(Principles of Communication Engineering)』는 요즘도 디지털 통신 분야의 기본서로 사용되고 있다. 제이컵스 회장으로부터 CDMA 북한 진출, 로열티 문제, 세계 IT경기 전망, 3세대 이동통신 현황 등을 들어봤다.

-한국 정부와 KT 등 민간기업이 북한에 CDMA 방식의 이동통신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퀄컴은 (한국이)북한에 대한 CDMA 관련 장비 수출을 위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나를 비롯해 퀄컴의 직원들은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 상무부·국무부의 관계자들과 만났고, 지금도 워싱턴 사무소의 직원들이 담당하고 있다. CDMA 북한 진출 문제는 아직 한국이 미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없고, 통신망 구축을 위한 형식과 절차도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미 정부의 허가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허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

-한국 기업이 퀄컴에 매출액의 5%가 넘는 비싼 로열티를 내고 있다. 비율을 내릴 의사는.

"1990년대 초반 한국 기업들과 로열티 문제에 합의했고 이후 한국 기업은 내수뿐 아니라 수출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로열티가 적정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기술의 로열티와 비교했을 때 높지 않다. 그래도 주기적으로 한국 업체와 로열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시장상황 변화에 따라 미세조정(파인튜닝)하고 있다. "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 가입자를 갖고 있다. 진출 계획은.

"퀄컴은 90년대 초반부터 중국 진출을 시도했으나 시장에 진입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차이나유니콤이 2세대 기술로 CDMA를 시작했다. 이제는 3세대인 CDMA 2000-1X로 빠르게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현재 가입자가 4백만명이며, 연말에는 7백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단말기 공급이다. 차이나유니콤 외에 차이나텔레콤·차이나넷컴 등 두 업체가 조만간 CDMA방식을 도입할 것 같다. 한국의 단말기 제조업체들에는 큰 기회다. "

-유럽 시장에서는 아직 매출이 미미한데.

"지금까지 2세대 통신에서는 유럽 시장에 들어갈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제한받았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3세대는 상황이 다르다. 유럽 시장에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유럽에서도 CDMA의 장점을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지역에 단말기칩과 시험장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루마니아에 3세대 CDMA가 들어갔고 러시아에도 조만간 들어갈 것 같다. 2004년쯤 유럽에 3세대 인프라가 갖춰지면 CDMA 사용자도 증가할 것이다."

-북한에는 이미 태국의 록슬리사 등이 유럽방식(GSM)으로 진출해 있어서 CDMA방식 구축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CDMA 와 GSM의 대결 구도는 중국·인도 등 어느 지역에서나 항상 있었다.중국의 경우 초기에는 GSM방식 밖에 없었으나 결국 CDMA가 들어갔다. 이는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군사적 목적으로의 전용 우려도 있지만, 통신기술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과거 미국 정부는 면밀한 검토를 거쳐 CDMA기술 및 통신장비의 중국 수출을 승인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CDMA기술 수출이 아니라 장비를 수출하는 것이어서 중국보다 (승인받기가) 더 편할 것이다".

-IT 경기가 침체돼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언제쯤 회복될 것으로 보나.

"IT산업이 어렵다. 유럽 기업들은 IT분야에 상당한 돈을 투자한 상태고 주요 통신업체들이 총 1천억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 광케이블 등 설비·장비 분야는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닷컴기업의 도태가 잇따르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맞물려 더욱 어렵다. CDMA쪽은 확장 국면에 있어 상대적으로 낫다. 이러한 상태가 한해 정도는 계속되고 내년말쯤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IT기업의 CEO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나.

"무엇보다 강력한 엔지니어링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IT산업의 발전 방향에 대한 깊은 이해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장과 임원들은 어느 정도의 엔지니어링적인 지식과 함께 관리와 재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산업에 대한 직관 또한 필요하다. "

-MIT 교수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벤처 기업인으로서 한국의 후배 벤처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한 순간에 성공하려고 너무 조바심내지 말고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시장에 선보이는 신제품은 혁신적이어야 하며 소비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술·상품이어야 한다.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빨리 안돼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자신감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

샌디에이고=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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