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도쿄발언파문}鄭 후 보 측 "한나라 공작냄새 짙다" 한나라-민주 "진실 밝히고 사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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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의원이 28일 '이익치 도쿄 발언'의 배후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 측을 지목했다.

鄭의원은 李씨의 발언이 사실이면 자신이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할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李후보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대통령 후보직을 걸고 배수진을 친 것이다. 鄭의원은 전날 저녁엔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정도로만 대응하다 이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격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까지 鄭의원은 배후조종설 주장을 뒷받침할 딱부러진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鄭의원 측의 심증은 현대증권 배임사건으로 미국에 도피하고 있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회장이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자청한 데서 시작한다.

'국민통합21'의 정광철(鄭光哲)공보특보는 "李씨의 27일 기자회견 전날 정체불명의 사람이 특파원들에게 회견 사실을 통보했고, 회견장에 동석했던 세 사람도 특파원들의 신원확인 요청을 거부했다"며 "회견형식에서부터 공작의 냄새가 짙다"고 주장했다.

鄭의원 자신은 "李씨의 주장이 3년 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발언내용과 똑같다"며 "그 당시 왜 李총재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지 않았는지, 어젯밤 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李후보를 비난했다.

당시 이회창 총재는 이익치 현대증권 전 회장의 주가조작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인 1999년 9월 3일 당직자 회의에서 "이번 사건이 정주영·정몽구·정몽헌·정몽준씨 등 鄭씨 일가 핵심인물의 동의와 참여없이 고용사장 독단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인지 국민은 의심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鄭의원이 '이회창 배후설'을 제기한 것은 단순한 부인만으로는 한나라당의 융단폭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정쟁으로 번지면 유권자들은 세가 약한 鄭의원 측보다 李후보 측 주장을 믿게 될 것이란 우려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북한 핵개발 의혹'등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여론지지율이, 반(反)재벌정서를 점화할 주가조작설에 영향받아 끝없이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鄭의원을 격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鄭의원은 회견에서 "항간엔 형님(鄭夢憲)이 이익치씨의 판단을 많이 따른다는 얘기가 있어, 형님께 '신중한 게 좋겠다'고 오래 전부터 말씀드렸는데 보다 설득력있게 말하지 못한 게 내 불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천억원이나 되는 돈이 오너 모르게 움직일 수 있느냐"며 "鄭의원은 진실을 숨기지 말고 사과부터 하라"고 공격했다.

민주당은 이와 함께 "이익치씨 발언의 정치적 배경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영기·남정호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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