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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탐구:귀금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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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패션지향적이며, 규격화·자동화가 곤란한 대표적 다품종 소량생산 품목

#디자인과 생산기술 개발 여하에 따라 고부가가치 창출이 무한한 산업

#종업원 10명 이하의 가내 수공업 형태에 머무르는 영세산업

<출처:산업자원부, 『귀금속 산업의 특징』>

신라시대부터 이어온 화려한 장신구 문화, 세계 기능올림픽 귀금속 세공부문을 7연패한 기술력, 3천명이 넘는 글로벌화된 유학파 귀금속 디자이너 등은 업계의 가장 든든한 자산이자 미래다.

그러나 귀금속산업의 비중은 미미하다. 산자부에 따르면 지난해 귀금속 제품 생산액은 4천억원으로 국내 제조업 총생산액의 0.07%에 불과하다. 제조업체 수는 2천5백여개이나 대부분이 종업원 10명 이하고, 2만여개에 이르는 유통상도 평균 2∼5명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영세산업이다. 산업종사자 수는 총 3천9백명으로 집계했다.

반면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귀금속 시장규모는 2조원이 넘고, 제조업체도 1만여개 이상, 산업종사자는 5만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귀금속산업은 이렇게 공식적 통계와 비공식적 추정치가 터무니없이 차이를 보이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음지산업'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치품산업이라며 눈총이 따가운 데다 보석·금 등 원자재에 대한 높은 세율 때문에 아직도 원자재 밀수가 횡행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무허가 업체가 난립하고, 세금당국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으면서 산업의 기세가 점점 오그라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발목 잡힌 산업현장=최근 홍콩 귀금속박람회에 상품전시차 참가했던 업체 관계자들은 귀국길에 무더기로 세관당국에서 격리돼 2시간이 넘게 샅샅히 조사를 받았다.

한 귀금속 디자이너는 "이 업계에 종사하면서 세관의 집중조사를 받는 건 일상화됐지만 수출을 위해 외국에 나갔다 와도 죄인 취급당하는 현실이 서글펐다"고 말했다.

한 귀금속업체는 얼마 전 TV에 자막광고를 내보내기로 계약했다가 방송사에서 상점 이름 앞에 '귀금속'이라는 말을 빼라는 통보를 받았다. 귀금속이 사치를 조장하는 단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면 우리 회사를 무슨 업체로 소개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외국에서 귀금속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해외파 디자이너 李모씨는 법인으로 등록하고 점포를 냈다가 지금은 후회막심이라고 했다. 수시로 세무당국과 지자체 단속반이 들이닥치는 데다 정상적인 재료만 쓰다 보니 가격경쟁력이 없어 영업도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것이 밀수 원자재를 사용하는 풍토 때문에 한계에 부닥치는 현상이라며,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한편에선 원자재에 대한 과도한 세금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무관세로 하는 금에 한국은 13.3%의 관세를 붙이기 때문에 애당초 경쟁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높은 관세 때문에 밀수품 사용이 많다 보니 보석의 수급도 들쭉날쭉해 품질이 고른 보석을 구하는 것도 힘들다.

디자이너 金모씨는 "얼마 전 해외 보석박람회에 나갔다가 3백50만원짜리 진주반지 3백개를 사겠다는 중동바이어의 주문을 같은 품질의 진주를 구할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며 "한국업체들은 기술과 디자인은 뛰어나지만 재료가 없어 수출을 못한다"고 말했다.

◇귀금속시장은 있다=최근 귀금속업계의 화두는 '내수시장의 재정비'다. 2년 연속 귀금속 수출 1위를 차지한 PJ주얼리가 '골드클릭'이라는 브랜드로 프랜차이즈사업에 나서는 등 수출업체들도 잇따라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거리의 금은방 절반 이상이 문을 닫는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수출로 살 길을 찾았던 업계가 다시 내수시장을 두드리는 이유는 귀금속시장이 과거 예물시장에서 훨씬 규모가 크고 가능성이 높은 패션시장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계 명품 브랜드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귀금속시장이 급격히 패션화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수입명품 시장이 연간 50%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올해 2조원대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귀금속시장은 고가시장은 해외 명품이, 3만∼20만원대의 중저가시장은 국내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나눠가지는 구도가 됐다. 국내 업체들이 외국산 명품 브랜드에 밀려 백화점에서도 퇴출당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이젠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1987년부터 브랜드 마케팅을 벌였던 골든 듀의 이건갑 사장은 "귀금속을 사치산업이 아닌 패션산업의 일부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확산되면 국내 귀금속산업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에서도 가능성이 보인다. 외환위기 이전 연간 7천만달러 규모였던 수출은 외환위기 첫해인 98년 3억달러로 4배 이상 급성장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수출업계 관계자들은 "해외시장에서 한국의 디자인이 통하고 있어 재료공급만 원활하다면 한번 해볼 만한 산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양선희, 시진=박종근 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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