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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삼성 : '초일류' 전도사 이학수 드림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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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존폐 기로에 몰린 자동차사업을 되살리고자 삼성이 기아자동차 인수를 위한 1차 입찰에 뛰어든 직후인 1998년 9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에선 한달 가까이 이학수(李鶴洙)구조조정본부장과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 소속 팀장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삼성차의 미래.

격론이 오간 끝에 결국 자동차 사업 확대 불가로 결론지었고, 삼성은 한달 뒤 열린 최종 입찰에 나서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전력용 반도체 사업 부문을 미국 페어차일드사에 판 것을 비롯, 삼성중공업 건설중장비 부문과 삼성물산의 유통사업 매각 등 숨가쁘게 이어진 사업정리와 구조조정이 모두 구조본의 검토를 걸쳐 실행에 옮겨졌다. 삼성 관계자는 "구조본은 외환위기를 오히려 삼성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기회로 반전시킨 주역"이라며 "그때나 지금이나 회사의 미래를 위해선 언제라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매주 월요일 오전 8시30분이면 구조본 소속 팀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룹의 주요 현안들을 논의하고 조율하는 일로 한 주일을 연다.

구조본은 이처럼 국내 재계 사상 처음으로 올해 '매출 1천억달러(1백20조여원), 순익 1백억달러(12조여원)'시대를 여는 삼성 선단(船團)을 사실상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은 재무·인사·경영진단·홍보·비서·법무·기획팀 등 7개팀 1백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파워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력하다. 이런 구조본의 총지휘자는 이학수 사장이다. 구조본의 전신인 비서실 차장을 거쳐 97년 삼성 회장비서실장으로 승진했으며 98년 4월부터 구조조정본부장을 맡고 있다.

李본부장은 경영 감각이 뛰어난 데다 이건희(李健熙)회장의 '경영 전도사'로 평가될 정도로 회장 방침을 가장 잘 소화하고 이를 일선에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관계자는 "관리와 경영능력을 겸비한 것이 강점으로, 경영 전반을 읽는 감각과 조직관리 능력이 탁월하다"고 밝혔다.

그의 남다른 경영 감각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94년 말 비서실에 있다 삼성화재 대표이사를 맡아 야전(野戰)에 복귀한 李본부장은 취임 일성으로 "3년 안에 시장점유율을 두배 이상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업계는 물론 그룹 내부에서조차 李본부장의 '공언'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가 제일 먼저 내놓은 '비책'은 급여 인상과 종업원복지 등 임직원 사기 진작 방안. "직원들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경영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일선조직을 돌며 마케팅 정책과 교육, 인력 사항을 꼼꼼히 챙긴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삼성화재는 10%대 중반을 맴돌던 점유율을 1년반 만에 24%대로 끌어올려 경쟁업체를 완전히 따돌렸다.

김인주(金仁宙)재무팀장은 서울공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나온 공학도지만 입사 이후 재무ㆍ회계 업무 쪽만 맡아온 '재무통'이다.

97년 상무로 승진한 직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공로를 인정받아 전무를 거쳐 2년 만에 부사장을 다는 등 쾌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재무팀은 그룹의 중장기 사업방향을 조정하고 계열사가 건실한 재무구조를 갖게 하는 것.

97년 3백60%에 달하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78%까지 끌어내렸고 이익도 매년 5조원 이상 낼 수 있는 구조로 탈바꿈시켰다. 최근에는 중복 업무를 조정해 낭비를 막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장기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참모로서의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구조본 전체 인원 중 약 3분의1이 재무팀 소속일 정도로 '핵심 중 핵심'이다.

홍보팀은 삼성 그룹의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국내외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이 주업무.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83억달러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데는 질좋은 제품 때문도 있지만 98년부터 홍보팀이 주도하는 '삼성브랜드 일류화 전략' 덕분도 컸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홍보팀의 책임자인 이순동(李淳東)부사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삼성전자 홍보팀장과 비서실 홍보 이사를 거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업계 관계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언론사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올해는 전경련 경제홍보협의회 회장까지 맡아 홍보계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인사팀은 사람을 가장 중시하는 그룹으로 알려진 삼성의 인사정책 수립과 교육 등이 주업무다. 연봉제 등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정착시켰고, 2천명이 넘는 해외 지역전문가와 해외 경영학석사(MBA)를 양성했다. 최근엔 이건희 회장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삼성 이건희장학재단'사업을 비롯, 핵심인재 육성과 전세계 우수인력 발굴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노인식(魯寅植)인사팀장은 77년 삼성반도체통신에 입사한 후 삼성전자 인사부장과 인사팀 이사를 거쳐 97년부터 구조본 인사팀을 이끌고 있다. 강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부서를 이끌지만, 사석에선 팀원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것이 장점이다.

박근희(朴根熙)경영진단팀장은 그룹 감사를 총괄한다. 朴팀장은 감사 대상 계열사와 각 사업장에서 내놓은 자료들을 검증하기 위해 라이벌 회사까지 찾아가 '취재'를 할 정도로 꼼꼼한 조사로 정평나 있다. 또 감사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인재'들을 발굴하는 일도 그의 몫. 삼성 관계자는 "97년부터 4년간 진행된 경영진단에서 그의 추천으로 과장이 부장급으로 승진하는 등 1백명의 인력이 발굴됐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이나 기관에서도 경영진단 기법을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팀은 삼성의 국제계약·송사 등 법적 문제를 처리하거나, 법적 문제 발생 소지를 미리 예방하는 위기관리팀이다. 외환위기 당시 자산의 해외 매각 계약과 특허권 분쟁 등을 무리없이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철(金勇澈)법무팀장은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97년 이사대우로 삼성에 합류했다. 여섯명의 중견 판검사 출신 변호사 군단을 이끌고 그룹의 '위기관리'업무를 진두지휘한다.

기획팀은 국내외 경영환경분석과 외국 선진기업 경영전략 분석 등을 통해 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만들어 낸다. 때로는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도 분석해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한다. 장충기(張忠基)기획팀장은 학계와 경제계에 지인이 많고 뛰어난 분석력과 예측력이 장점이다.

김준(金準)상무가 이끄는 회장실 비서팀은 李회장의 주요인사(VIP) 접견 행사 등 회장의 대내외 활동을 보좌한다. 金팀장은 삼성생명 법인영업ㆍ재무팀을 거쳤으며 깔끔한 일처리와 탁월한 브리핑으로 정평이 나있다.

표재용 기자 pjyg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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